'Reset'에 해당되는 글 46건

  1. Dime Novel #26 - Beyond doubt 2014.09.16
  2. Dime Novel #25 2014.08.26
  3. Dime Novel #24 2014.08.07
  4. Reset 2012.10.05
  5. Dime Novel #22 2012.02.28
  6. Dime Novel #21 6 2011.09.30
  7. Dime Novel #20 2 2011.09.03
  8. Dime Novel #19 2 2011.08.15
  9. Dime Novel #23 2011.07.24
  10. Dime Novel #18 6 2011.06.30
  11. Dime Novel #17 8 2011.06.08
  12. Dime Novel #16 2 2010.11.22
  13. Dime Novel #15 4 2009.11.23
  14. Dime Novel #14 6 2009.11.18
  15. Violet 2 2009.11.18
  16. Dime Novel #13 6 2009.11.13
  17. Dime Novel #12 4 2009.11.08
  18. Dime Novel #11 4 2009.10.29
  19. Dime Novel #10 6 2009.10.27
  20. Dime Novel #9 2 2009.10.22
  21. Light Micrograph 8 2009.10.15
  22. Seoul Station 4 2009.09.23
  23. Dime Novel #8 4 2009.09.22
  24. Dime Novel #7 6 2009.09.19
  25. Dime Novel #6 2 2009.09.14
  26. Dime Novel #5 6 2009.09.12
  27. For reason 4 2009.09.10
  28. Dime Novel #4 6 2009.09.10
  29. Dime Novel #3 6 2009.09.09
  30. Dime Novel #2 2009.09.07

Dime Novel #26 - Beyond doubt

from Reset 2014. 9. 16. 02:42
낙서가 끝나면, 침묵이 시작된다.

2010/01/11 - [어떤 날] - The empty space

*

언니가 나를 관찰해 주었으면 했어.

맨션의 매트리스 위, 나는, 배낭을 연다, 젖은 신문과 찢어진 소설책과 노점에서 훔친 귤과 선글라스와 리본이 달린 인형과 립스틱과 아이섀도우가 들어 있다, 나는, 매트리스 위에 쪼그려 앉아 찢어진 소설책의 여백에 메모를 한다, 맨션에 들어온 지 한 달째, 언제쯤 나는 도망칠 수 있을 만큼 안전해질 수 있을까? 케이가 그런 나의 모습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그냥 낙서하는 거야. 케이를 돌아본다. 케이는 밝은 얼굴을 하고 있다. 천진한 표정으로. 케이는 J가 내 곁에 없을 때 한없이 상냥해진다.

"어떤 낙서?"
"J가 자신을 관찰해 달라고 하니까 뭐라도 써 놓는 거야."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
케이가 말한다.
알고 있어. 언니가 이곳을 언제든지 떠나고 싶어한다는 것을 말이야. 관찰하는 사람은 언어를 쓰지 않아.

맨션의 매트리스는 푸른 꽃과 같은 얼룩이 져 있다. 그곳에 J와 누워 있으면, 꼭 FOUR SEASONS HOTEL의 SEALY 매트리스에 누워 있는 기분이 된다. 퀸사이즈의 매트리스 위에서, 나는, J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맨션에서 다음에 어떤 파티를 하면 좋을까, 와 같은 것이었는데, J는 레이브 파티를 기획하는데 탁월할 재능이 있었다. PULP 그래비티를 그리는 것이며, 어떤 음악을 선정할지, 무대는 어떻게 꾸밀지, 조명은 어떻게 할지, 럼과 진 / 보드카를 얼마나 가지고 올지, 그리고 파티에 사용할 엑스를 구하는 것도 모두 J의 몫이었다. 그런 매트리스 위로 달빛과 맨션 안의 오렌지빛 조명이 함께 떨어져 내린다. 그 모습을 보자 BENETINT를 묻힌 J가 생각난다.

"언어?"
케이는 생소한 단어를 쓴다.
"언어."
케이가 말한다.
나는 J가 언니와 행복해지는 것이 싫어. 언니가 오기 전까지, 우리는 아무 문제 없이 지냈어. 서로 의지하며, 힘든 일이 있을 때 서로 도와주면서 말이야. 그러는 동안에 서로의 언어를 배웠어. J와 나는 공통의 언어를 가지고 있어. 어디에나 언어는 있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와 같은 언어도 있을 테지만, 여기 맨션에서는 맨션에서만 통용되는 언어가 있고, 다운타운에는 다운타운에서만 통용되는 언어가 있어. 언니에게도 언니를 이루고 있는 언어가 있을 테지만, J와 나는, 언니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공통의 언어를 가지고 있어. 그게 기억을 재생시켜 주니까. 그러니까 우리 사이에는 언니가 필요 없어.
자신을 위해주고 아껴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옆에 있게 되면 그때부터 세상은 끝이 나는 거야. 알고 있지?

케이의 말을 듣자, 마치 오랫동안 팔을 괴고 있어, 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상한 섬에서의 사내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기억이 담요로 머리를 씌우는 것처럼 나를 덮쳐 왔다. 이상한 섬에서의 사내는 내게 몹쓸 일을 많이도 시켰다. 그리고 나는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사내가 하는 일을 관찰했다. 사내의 습관, 말투, 인상, 좋아하는 일, (들), 싫어하는 일, (들), 사내 자신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변덕스러운 감정의 변화, 같은 것 (들). 그러는 사이에 사내에게는 사내만의 독특한 행동 패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관찰하는 것이라면 자신 있어.
내가 말한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

케이는,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다, 고 하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순간 궁금해졌다. J가 말한 '관찰'이라는 것과 내가 알고 있는 '관찰'은 다르다.

나는 낙서를 끝낸 소설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낙서가 끝나면, 침묵이 시작된다. 공통의 언어가 없는 관찰. 케이의 독백. J의 해체]

J가 돌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2009/06/24 - [글쓰기] - Paint Me 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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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me Novel #25

from Reset 2014. 8. 26. 01:14
맨션으로 돌아오는 아이들이 있었다. 우리는, J와 (케이?) 나는, 맨션의 제일 꼭대기에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는 했다. 이를테면, 태풍 전날이나, 추운 겨울이 오려고 할 때쯤, 그렇지 않으면 BOXING HOLIDAY 를 2일 정도 앞둔 날, 주로, 맨션으로 돌아오고는 했다, 다운타운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아이들, 나는 그 모습이 믿어지지 않아서, J에게, 어떻게 다시 돌아오는 것일까? 언제나, (나는),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데 말이야, 라고 했다, J는, 멈추지 못하면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라고 말하며, 큰 소리로, 손을 흔들면서, 아이들을 불렀다. 어디에 갔다가 오는 길이야?

윤, 이라고 이름을 밝힌 아이가 맨션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우리는, J와 (케이!) 나는, 그 아이를 만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BURBERRY 패턴과 유사한 체크 남방과 청바지를 입은, 비쩍 마르고 키가 제법 커 보이는, 윤, 이라는 아이는 케이와 같은 학교를 다녔다고 했다. "사실 처음 며칠 동안은 좋았어, 다운타운에는 여기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넘쳐나서, 무엇을 하면 좋을지, 설레기도 하고, 무엇이든 신나는 일들이 가득할 것이라고 생각했어. J가 구해다 주는 엑스를 사용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그런 좋은 일들이 가득할 줄 알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문제가 생겼어." 윤, 이라는 아이는 호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어서 보여준다, 황금빛의, 5cm 는 되어 보이는 열쇠다, 다운타운에서 가져왔다고 했다. 

"어디를 가나 그곳에는 먼저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먼저 태어난 사람이든, 먼저 이주해 온 사람이든, 뭐라고 할까, 맨션에는 J와 (케이?) 가 있는 것처럼, 다운타운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어. 맨션은 작고 알기 쉬운 곳이니까, 여기는 J와 (케이!) 가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왔다가 갈 수 있는 곳이니까, 상관없지만, 거기는 그렇지가 않았어, 가령, 맨션에서 왔다고 하면, (한 번 와본 적도 없으면서) 놀려대는 거지, 거기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곳이야, 라는 식으로 말이야. 그래서 멈추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어. 대신 이걸 가지고 왔어."

J는 열쇠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쳐다보다가,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워, 공중으로 올려다보기도 했다. 뭐지 이건?
"열쇠." 윤, 이라는 아이가 말한다. "그냥 참을 수가 없었어. 어디를 가나, 우리를 이상하게 보는 것만 같았거든. 단지 맨션에서 탈출, 해서 좋기만 했는데도, 그런 사람들의 모습이 정말 견딜 수가 없었어.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이 전혀 알아차리지 못할 것들만을 훔치기로 했어. 오래된 라디오라든지, 자전거, 거리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CHEVY NOVA 같은 차량이라든지, 낡은 옷, 그리고 약간의 현금, 그리고 J가 준 엑스까지, LENOX AVENUE 가 끝나는 창고에 가두어 두고 왔어, 자세히 찾아보면, TEDDY BEAR 도 볼 수 있어. 이게 그 열쇠이야."

윤, 이라는 아이의 명쾌한 설명에 J가 웃어 보였다. 맨션에도 BULLYING 은 있다. J는 나로 인해 소원해진 케이가, (나는 네가 행복해지는 것이 싫어, 라고 하며) 오열하는 모습을 보고, 몇 번이고 입안으로 엑스를 밀어 넣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케이는 정신을 잃고, HIGH 의 상태에서 끈질기게 J를 잡아당기고, 그런 케이를, J는 밀쳐 내었다. 

"멈출 수 없으면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어."
J가 말한다. 멈출 수 있는 사람만이 BULLYING 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마치 아이들이 황금빛 열쇠로 BULLYING 을 멈추었듯이. 맨션에 있는 동안은 한 번도, 이곳을 벗어나 다운타운으로 간 아이들이 도시에 불을 질렀다는 뉴스를 본 적이 없다.

2009/05/09 - [어떤 날] - An Adequate Perfor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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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me Novel #24

from Reset 2014. 8. 7. 01:40
전화가 걸려온다, 당신이다, 나는, 무더위에 잠을 잘 수 없어, 얼음으로 가득 찬 욕조 안, 에 몸을 담그고 수면 위, 에서, 의뢰인이 선물로 준, ROMANEE CONTI 를 홀짝이고 있었다. 걱정되어서 전화했어. 당신이 말한다. 얼음물로 차가워진 허벅지와 가슴에서, ROMANEE CONTI 의 향이 새어 나오는 것 같다. 조금 발그레한 얼굴로, 무슨 말이야? 라고 묻는다, 나는, 그 의미가 궁금해서라기 보다, 당신이 어떤 표정으로 수화기에 귀를 대고 있는지, 어떤 복장으로, 어디에서 전화를 거는지가 궁금했다. 그냥 TV 를 보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 온갖 학대에 대한 이야기들만이 흘러넘쳐서, 네 생각이 났어, 언제였더라, J와 케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난 다음 날인가 그랬을 거야, 모두 학대받고 있어, 단지 그 사실을 모를 뿐이지, 라고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어, 아마, 그러니까 그런 모습을 보고, 네 기억이 되살아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 이야기를 듣고, 손에 쥐고 있던, 붉고 푸른 튤립꽃을 닮은 잔을 비스듬히 기울여서, ROMANEE CONTI 를 욕조로 흘려보냈다, 곧 욕조 안, 은, 마치 푸른 잉크가 아지랑이를 피우듯, 붉은 실타래들이 흩어져서 내 몸쪽으로 와 닿았다. 그러자 알몸으로 있는 것이 다행인 것처럼 느껴졌다. J를 만났어, 정확히 말하면 J가 나를 찾아왔었어. J? 내가 말한다. 자리에서 일어선다. 체리 향이 나는 루비색의 액체 방울이 차가운 코끝에 맺혀 있는 것이 보인다. 그 모습이 등 뒤에 나 있는, 나의, 푸른 반점들과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 속의 당신은,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듯이, 그 반점들을, 눌렀고, 나는, 아파, 라고 당신에게 말했다. J가 무슨 일로? J가 당신을 어떻게 알아? 맨션에 있을 때 네가 하는, 내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어, 깡마른 몸에 단발머리를 하고, 손에는 아직 지워지지 않는 유화물감이 묻은 채로 왔었어. J가 그러더라고, '나'를 통해서 [너]를 알 수 있는지 궁금해서 오게 되었다고, 신문에서는 온통 학대에 대한 이야기들만이 넘쳐 흘러서,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고 했어. 그래서, 나도, 궁금해졌지, 네 기억은 어떤지에 대해서, 아직 그대로라면 좋겠어, 네 기억은, 변하지 않는 그대로, 라면 좋겠어. 당신이 말한다. 수화기 너머에서 J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내가 언니에게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언니는 또 왜 내게 그런 짓을 했는지, 따위는 정말 궁금하지 않아. 단지 아무도 그 시간을, 멈추어 줄 수 있는, 누군가가, 그 무언가, 가 없었다는 사실에, 그 일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언니가 지울 수 없이 미웠어, 언니와 나 사이는 그런 이유들 뿐이었어. [나?]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아서 모르겠어, 내게 기억이 있었던가? 학대에 대한 기억이라면 무엇을 말하는 건지도 불분명해, 내가 말한다. 전화를 끊고, 나는 마른 수건으로 온몸을 닦고, 나, 와, 화장대 앞에서 J를 위해 화장을 하기 시작한다. 학대는 고통을 전달하지 않고, 상상력을 차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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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t

from 카테고리 없음 2012. 10. 5. 00:56
독백, 

맨션이 더러워졌어. 얼마 전에 맨션을 다녀왔지. 한번은 가보고 싶은 곳이었기 때문에, 꼭 한번은 가보고 싶은 곳이었으니까, 언니는 그렇지 않았어? 그곳에서 있었던 일이 그리워 그런 것은 아니었어. 단지 무언가 남겨두고 온 것 같은 느낌이 늘, 들 때마다, 햇살에 비치는 반대편에 드리워지는 그림자처럼, 뒤를 따라다니는 거 같은 느낌이 들었어. 무슨 말인지, 알지?

독백. 

말이 늘었어. 맨션에 다녀왔지, 그런데 그곳이 사라지고 없었어, 맨션이 더러워졌어. 

독백. 

사라진 맨션.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곳. 케이?

독백.

언제나 가끔 그때의 광기가 그리워, 무엇이든 잊고 싶을 때, 너와의 기억 속으로만 함몰하고 싶을 때, 몹시도 내가 싫어질 때. 기억나니? 그때 내가 네게 했던 온갖 나쁜 일들로 인해, 나는, 불행해져도, 슬퍼져도 상관없는 사람이 되었어. 그런 위로를 받았어.

J가 케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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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me Novel #22

from Reset 2012. 2. 28. 02:20
현재 _ 한 달 전, J의 전시회가 있었다. 합정역 근방, J는 맨션에서 살아남았고, 나는 맨션에서 도망쳤다. J의 배가 홀쭉해졌다. 천정이 높은 전시회 입구로 들어서자, 하얀 벽 앞에 수채화처럼 서 있는 J가 보이고, 벽에는 J의 지느러미가 만들어 낸 그림들이 걸려 있다. 내가 떠나고, J의 지느러미가 만들어졌다, 나로 _ 부터,

슬픔에 닿아있을 때보다 불의에 닿아있을 때, 더 살아있기 편해. 
J가 말한다, 저만치에서 뛰어와, 나에게는, 붉고 푸른 등을 단 가게들이 끝나는 어느 모퉁이에 서 있던 J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 J가,

내 뒤를 따라올 때, 나는 세상에서 단 한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릴 거야. 그건 맨션에서 일어났던 일은 아니었어. 절대 그렇게 될 수 없어, 언니, 나는 불의에 항의하기 위해서, 이 일을 계속할 거야. 언니와 나 사이에 있었던 그 불의에 항의하기 위해서, 언니가 언니의 불의에 항의하기 위해서 나를 받아주었듯이 말이야.
첫 전시회에서 _  

J가, 내게, J는 맨션에서 있었던 일들을 그림으로 그려 화가가 되었다, 나와 있었던, 일들 _ 잊히지 않는다는,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때의 일이 떠오른다, 
내가 서 있던 맨션의 모습도, 그런 나를 올려다보고 있던 J의 모습도, 그리고 내가 왜 맨션을 기억하고 있는지도, 그토록 도망치고 싶었던 _

나는 네가 상처입었으면 좋겠어, 케이, 네가, 망가져 버렸으면 좋겠어, J가 말한다, 케이가 무너져 버린 맨션, J와 내가 만나 헤어졌던 곳, 케이도 J와의 관계에서 만들어진 불의에 항의하고 있을까? _ 어딘가에서. 

케이?  


세상에는 단 한 사람만이 필요해, 결코, 가질 수 없는 단 한 사람. 그런 것에 상처는 기생하며 살고 있겠지. 거기에는 나도 다를 바가 없어. 
J가 말한다.  

그렇지 않아? 그걸 우리는 사랑이라고 불렀어. 사랑해, 라고 말할 때 그건 언니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나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했지. 예를 들면 더는 록 페스티벌에 갈 수 없는 나이가 되었을 때 느끼는 감정 같은 것 _ 지금은 느낄 수 없는 것.

J가 냉장고 문을 연다, 냉장고에서도 열이 난다. 손을 대면 뜨겁다. J가 뜨겁다.

언니도 봤어야 했어, 내가 TV에 나오는 것을, 내가 쓴 책들이 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것을, 그리고 내가 어떻게 살고 있나 하는 것을 언니도 봤어야 했어. 그렇지 않다면 의미가 없어. 언니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야, 언니없이 내가 얼마나 망가졌나 하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도 아니야. 어차피 언니는 내가 끝까지 갔을 때의 모습을 모두 보았을 테니까. 단지 언니가 나를 보아주었으면 했어. 그안에서 살고 싶었어. 있는 그대로의 나를 관찰해 주던, 언니가 보는, 나 자신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가 너무도 궁금했어. 

J가 내게 말한다. 내가 당신에게 그토록 하고 싶었던 말을 J가 내게,

나를 사랑하니?
아니.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열렬히 사랑한다고 해서, 그 사랑이 나에게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아. 사랑받지 못하면 사랑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아, 아니, 사랑하지 못하면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쯤은 알아, 아니, 내게 필요했던 것이 사랑이 아니었다는 것쯤은 알아, 언니에게 있어서, 나는 _ 

그냥 마냥 그리운 사람, 그런 사람을 모두 한명쯤은 마음속에 품고 사는 거지. 늘 생각하지는 않지만, 생존에 필요하지 않은, 함께 할 수 없는, 이 애잔한 감정의 이입을 우린 사랑이라고 불렀지, 그래서, 그 이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어. 정말 아무 것도 없었어. 그때 알게 되었지 _ 

누군가 자신을 아껴주고 위해주는 사람이 있게 되면 세상은 끝이 나는 거야. 

도망치고 싶었던 곳 _  

맨션으로부터의 독립, 맨션의 독립. 

세상에는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 _ 그것도 변하지 않았어. 
J가 말한다, 그때처럼 내게, 치즈 케잌을 건네어 준다.
이렇게 말할 때, 이건 언니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나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 _ 

J를 보고 있으면 당신 생각이 난다.
네가 보지 않아도 나는 다른 사람과 자고 있을 거야.
당신은 내게 말했다.  

내 글에 대한 너의 표절이 너를 행복하게 한다면 그렇게 하도록 해.
내 삶에 대한 너의 표절이 너를 행복하게 한다면 그렇게 하도록 해.
이제, 네가 정말 행복해 질 수 있을까?
당신이 내게 말했다.

단지 이 일이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간단한 일이라면 좋겠어.
이 일이 그냥 세상에서 가장 적절한 분노라면 좋겠어 _ 

이 일을 멈추면, 언니와 있었던 그 많은 일들이,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될까, 그게 두려워.

J가 말한다, 허탈한 밤.

J는 옛날의 J와 같이, 아름다운 몸을 헐벗고 나의 옆에 눕는다.  

그리고, J의 전시회가 끝난다, 다행스럽게도 _  

끝나지 않을 물음, J는 맨션이 빚어낸 아이일까? 케이는 J가 버린 아이일까?
그리고 나는 J를 떠나기만 한 것일까?
다행스럽게도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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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me Novel #21

from Reset 2011. 9. 30. 00:18
문 두드리는 소리가 빗물에서 난다 비가 오는 것은 아니다 두렵다고 말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건 내가 아니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 내 의식은 바닥에 고정되어 흔들리지 않는다 꿈을 꾼다고 생각했다 가슴을 파먹어 대는 네 말소리가 빗물을 흉내 낸다 나는 젖었고 보잘 것 없다 눈물 흘리며 밤새 들키지 않게 웃는다 운다 피곤하다 버림받은 날은 낯선 사람과 자고 싶어진다 그건 꿈이 아니다 희망도 아니다 살에 파고들어 있던 첫 기억이 고구마 굽는 냄새를 뱉어낸다 그런 식이다 다리를 벌리고 의자에 앉아 있으면 손에 들고 있던 위스키 잔이 바닥에 떨어져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 싱글몰트 위스키로 범벅된 양탄자 위로 벗겨진 내 구두가 보인다 나는 숨을 쉴 수 없다 그럴 자유가 없다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다 수증기가 타고 있다 

나는 관계에 몰입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 나는 색을 칠한다 몸에는 알 수 없는 상처들이 있다 죄를 뉘우쳐야 한다 상처는 죄를 잊게 한다 죄를 짓지 않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누구든 잃어버린 기억이 있는 것은 아닐까 너에게는 향이 난다 잃어버린 것 가질 수 없었던 것 갖고 싶은 것 그러나 결코 가질 수 없는 것 내가 동떨어져 있는 것은 네가 아니다 내가 그리워했던 것은 더욱 네가 아니다 말하던 것을 멈추고 옷을 벗자 이곳에서 다시 태어나는 기분 같은 걸 바라는 게 아니다 네가 뭘 안다고 너는 몰라 어떻게 사는지 볼 거야 그런 파란 점박이 계집애 따위에게 파묻혀 어디까지 가는지 볼 거야 그러니까 나와 떨어져 있어도 내게서 떠나지 마

그 아이가 내게 말했지 우리는 검은 인형을 들고 거리에 서 있을 거야 사람들이 찾을 수 없도록 광택이 없는 옷을 입고 검은 인형을 흔들며 거기에 서 있을 거야 그러니까 너만이 발견할 수 있어 그 아이가 말했지 우리를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얼마 되지 않아 왜냐하면 검은 인형 단지 검은 곰 인형이라고 말하자 키보다 큰 검은 곰 인형을 들고 서 있는 우리를 발견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거야 사람들은 우리를 볼 수 없어 눈에 띄지 않게 거리에 서 있겠지 빛없는 곳에서 만지거나 볼 수 없도록 아주 오랫동안 서 있을 거야 그렇지만 너는 나를 볼 수 없어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야 보이지 않을 뿐이지 그런 것을 너는 상상할 수 있니? 그 아이가 말했지 그만 버림받고 울어

케이의 무너진 독백, J의 외면 그리고 나. 

케이가 엑스에 취한 날, J의 등에서 비가 내렸다. 내 옆은 흠뻑 젖었다. 케이는 이전에 엑스를 한 적이 없다. 케이의 손목에서 지익하는 소리와 함께 지퍼처럼 살이 열리고 피가 떨어진다. 여기는 맨션이다.

기억해 봐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야 네가 누리고 있는 것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야 값을 치러야 해 네가 그 값어치야

J가 케이에게 다가간다. 케이의 입안으로 엑스를 밀어 넣는다. 케이의 오르가즘. J의 이별. 

J가 말한다. 네가 그 값어치야.

2010/08/08 - [어떤 날] - 빗물
2009/09/03 - [글쓰기] - Illusional Mem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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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me Novel #20

from Reset 2011. 9. 3. 03:12
방 안, 이상한 섬의 사내가 내게 다가온다. 나는 엎드려 LES MISERABLES 을 읽고 있다, 몸을 추스르며 벽에 등을 기대어 앉는다, 내게 다가오는 사내의 얼굴을 쳐다본다, 사내는 이상한 것을 내게 먹인다, 그리고 나에게 나쁜 짓을 한다. 나는 옆구리와 배가 타버릴 것 같다. 숨이 막힌다. 도망칠 수 없다. 이건 모두 내 잘못이다. 나는 사내에게 복종하는 것을 배운다. 무엇이든 사내의 마음에 들게, 행동하고, 말한다. 그렇게 해야, 사내의, 나를 향한 폭력이 멈출 수 있다, 일시적으로, 나를 향한 사내의 폭력을 멈추는 길은, 단지 내가, 사내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나는 살기 위해, 폭력은 죽음에 이르지 못하는 고통이므로, 사내가 내게 왜 폭력을 행사하는지 고민하지 않는다, 사내의 폭력을 멈추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건, 생각하지 않고 복종해야 한다. 나는 감정이 없는, 때로는 사내가 원하는,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못생긴 인형이다. 그리고 나쁜 짓을 잘 견딜 수 있는 생물이 된다, 이상하게도, 그건 머리가 좋은 홈리스는 (잘) 살아갈 수 없는 것과 같이, 내 몸에는 알 수 없는 푸른 반점이 생기기 시작한다, 몹쓸 병에 걸린 사람처럼, 가끔 푸른 반점이 석양에 반짝이는 것을 사내가 바라본다, 나는, 철저히 사내의 몸에 달라붙어 있는 나 아닌 '나'가 된다. 그렇게 사내의 인격을 닮아간다.

J는 (이렇게) 말하고는 했다. 이 방에서 일어나는 일이 앞으로 우리 인생을 결정짓게 될 거야, 사내의, 푸른 반점을 몸에 가지고 있는 나를 바꾸기 위해서는, 지금 그 순간 그 방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가 중요했고, J는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J가 너무 싫었다, 나를 알고 있는 J가 싫었다.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 푸른 방, 나는 엉덩이가 드러나게 엎드려 있고, 종아리를 하얀 침대 시트가 감싸고 있다. 당신은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나는 LES MISERABLES 을 읽고 있다, Cosette, 이런 푸른 방, 몇 해 동안, 나는, 푸른 하늘만을 보며 걸었다. 낡은 카메라를 목이 걸고, 온전히 땅을 바라보기보다는 하늘만을 보며 걸었다. 이상한 섬에서의 사내와, 끔찍한 하루를 보내고는 했던, 그 바다 빛과 같은 하늘을 고개 들어 보며, 필름에 담았다. 나는 점점 LES MISERABLES 의 책 속으로 코를 빠트린다, 내가 싫어진다. 

그러자 당신이 내 옆에 눕는다. 내 귀를 혀로 한번 맛본 뒤, 

지금 네 모습은 네 아픔을 숨기기 위한 무엇이겠지?
당신이 내게 말한다.
공포로부터 자유롭게 낙하하는 것, 네가 해야 할 일이야.
당신이 내게 말한다.

당신도 어느 때, 사내가 했던 나쁜 짓을 내게 한다. 나는 망가진 턴테이블처럼 이상한 섬, 사내, 바다, 푸른, 하늘과 같은 것을 반복적으로 재생한다, 마치 고장 난 레코드의 쇳소리처럼, (I LIKE NOISE), 당신이 나의 푸른 반점을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듯이 혀로 건드릴 때마다, 내 감정과는 전혀 상관없는 말들을 뱉어낸다. 가령 사랑한다, 거나.

그리고 사내의 몸에 달라붙어 있던 것처럼, (때리지 마, 하라는 대로 할게), 당신의 품으로 들어간다.

J? 

, 나는, 맨션에서 엑스를 나 몰래 먹고 있는 네 모습을 볼 때마다, 저걸 가지고 이상한 섬으로 가서, 그 사내에게 사정없이 모두, 마음껏 먹이고 나서, 사내가 밤새 구토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어. 알고 있었을까? 이상하지?
당신의 품속, J에 대한 생각. 

상처(trauma)는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거야. 
내가 마음속으로 이야기하자, (맨션에 있던), J가 나와 동시에 말하기 시작한다.
상처는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거야.

그래서 잠 못 이루는 날도 늘어나고, 작은 일에 화내고 짜증 내는 거야, 자신을 미워하고, 다른 사람을 그와 거의 같은 정도로 미워하기도 하고, 자신을 미워하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서, 그걸 잊으려고 무슨 일이든지 벌이기도 하지. 결국은 쌓여 있는 에너지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알지 못하면, 그 에너지에 압도당해서, 자신을 망치게 되는 거야.
내가 말한다. 
알겠지? 나는 '너'가 아니야. 너도 '나'는 아니야.
그 상태로 저만치 가는 거야.

나는 J에게서, 나 아닌 '내'가 된다.

2009/06/24 - [글쓰기] - Paint Me Blue 
2009/05/07 - [어떤 날] - I w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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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me Novel #19

from Reset 2011. 8. 15. 04:14
모두 학대받고 있어.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지.

눈을 뜬다, 당신이 내게 말한다, 나는 검은색의 핑크빛 레이스가 들어 있는 란제리를 입고 있다. 지난밤 나는 당신에게 J와 케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당신은 등 뒤에 나 있는, 나의, 푸른 반점 _ 을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듯이 눌렀다, 나는, 아파, 라고 당신에게 말했다.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를 열고, 목이 말라, 에비앙의 뚜껑을 연다, 물을 마시자, 목 안에 무언가 들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치 J가 케이를 자신의 무릎에 눕히고, 혀가, 구토물, 로 범벅이 된 케이의 입으로, 엑스를 밀어 넣어 주는 것을 바라보는 있는 것처럼, 잘 잤어? 당신이 말한다, 응, 내가 말하고, TV 에서 나오고 있는 NEWS 를 들으며, 당신은 크리스털 마운틴을 드립한다, 그러면 늘 당신에게는 시고 단, 맛의 향이 난다, 그리고 나는 귀가 가려워진다. TV 에서는 누군가 자살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누구? 학대받고 있다니 무슨 말이야? 나는, 바스 가운을 입으며, 당신이 건네어 준 머그잔을 들고 자리에 앉는다. NEWS 말이야, 자살 NEWS, 모두 학대받고 있는 거야.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나는 당신을 바라본다. 학대, 이상한 섬에서의 사내, 그리고 내 앞에, 언제나 서 있을 것 같은, J의 모습이 그 위에 겹쳐진다, 내게 나타난다.

상상할 수 없게 만드니까, NEWS 가 하는 일은 그런 거야. 직접 보지 않은 것을 상상할 수는 없어. 우리는 그런 식으로 이루어져 있는 거지, WERTHER EFFECT, 자살 NEWS 가 나오는 횟수에 비례해서, 사람들은 더 자살에 취약해지는 구조인 거야. 왜냐하면, NEWS 가 고통을 전달해 주지는 않거든.

사람들은 고통을 좋아하지 않는다. NEWS 는 결코 고통을 보여주지 않는다. 고통을 전달하는 NEWS 가 있다면, 금세 폭동이 일어나든지, 누구도 그런 NEWS 를 전달해 주는 매체와는 가까이하지 않을 것이다. NEWS 는 누가 얼마나 많이 보느냐로 값어치가 매겨진다. 그 값어치가 광고 수익으로 이어지고, 그 수익으로 NEWS 를 생산하는 매체가 유지된다. 사람들은 자신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고통을 목격하게 되면, 분노하든지 무력해지든지, 도망치고 만다, 그래서 적당한 양의 정보만 흘려주는 것이다, 라고 당신이 말한다.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 왜 이른 아침에 당신으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어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하며, TV 를 끈다. 그런 나를 당신이 바라본다. 재미없는 이야기지? 그럼, 내가 말한다. 딱 그때뿐이었다, 그렇지, 세상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을 뿐이야, 그 외의 사람들은 모두 구경꾼이야. 사실은 구경꾼들이 돌멩이를 던지는 거지. 어느 쪽이 맞게 될까? _ 우리는.

몸을 더 묻고, 앉은 자리에서, 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당신에게서 나는 향이, 내게도 나는 것 같다, 그러자 물기 하나 없는 바스 가운 안으로, 내가, 꼭 숨어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당신의 그늘. 나는 일어나서 옷을 벗는다. 

억울한 일이 있을 때, 네가 고통 속에 있을 때, 비로소, 스스로 상상하게 되는 거야. 
이를테면, 누군가 네 앞에서, 죽고 싶어, 라고 말하게 될 때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지, 를 열심히 상상하지 않는다면, 너도 안전해질 수 없다는 뜻이야. NEWS 는 그런 것을 생각할 수 없게 만들어, 우리는 피해자나 가해자가 아니면 구경꾼일 뿐이야. 구경꾼으로밖에 살 수 없다는 건 학대받고 있다는 거야. 그러면 
다른 세상에 갈 수 없어. 무슨 말이야?
귀가 가려워진다, 당신이 내게 말한다. 당신은 쉬지 않고 내 몸에 나 있는 푸른 반점을, 마치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듯이 입술로 누른다. 당신의 체액, 시고 단맛의 향, 그리고 당신의 언어가 내 안에 스며든다. 마치 J가 케이를 자신의 무릎에 눕히고, 혀로, 구토물이 범벅된 케이의 입으로, 엑스를 밀어 넣어주고 있는 것처럼, 당신의 침이 나의 푸른 반점에 맺힌다.

그런데 당신도 알고 있었을까? 정말, 
당신이 나를 상상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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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me Novel #23

from Reset 2011. 7. 24. 03:04
새벽 3:03 _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늘 네가 생각나, J, 왜일까?
그런 날, 아픈 날, 거울을 보고 있으면 이상한 생각이 들어, 뒷골목을 숨어다니던 정키, 였으니까 나는, 이런 날은 네 그 모습이 떠올라, 그건 나를 두고 케이와 심하게 다툴 때의 네 모습도, 이름 모를 아이들을 데려와서 맨션을 엉망으로 만들 때의 네 모습도, 아니었지, 그리고 헤드라이트를 켠 검은색 승용차와 함께 어느 남성과 맨션으로 들어섰을 때도 아니었어.

꼭 어떤 모습을 그리워하는 게 아닌지도 몰라. 대하기 가장 편한 상대를 떠올리는 것인지도 모르고, 지금까지의 일을 세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대여서 그런지도 몰라. 매번 일일이 '나'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일은 번거롭고, 시간 낭비인 것 같아서 말이야. 그 시간을 소비하는 데에는 익숙하지 못했어. 그래서 처음 나를 알아봐 준 사람, 이라면 끝까지 가도 좋아, 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지. 그때,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 

'언니가 나를 관찰해 주었으면 했어.'

라고,

J, 네가 그랬었지, 
붉고 푸른 등을 단 가게들이 끝나는 어느 모퉁이를 지나, 맨션으로 향하던 그 길에서,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너무도 불분명했는데, (말이야), 왜냐하면 그럼 나는 요란한 DVD RECORDER 처럼, 무의미하거나, 소리 나지 않는 무생물이 되어야 하는 걸까, 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내가 관찰해야만 했던 것은 이상한 섬에 있던 사내였으니까, 사내는 내게 무슨 짓을 할지 몰랐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사내의 입장에서 생각해야만 했으니까, 그런 기억이 싫었어, 그런데 이런 밤이면 그 말이 꼭 이렇게 들려서 난처해져.

'언니가 내 눈에 비친 언니를 보았으면 했어.'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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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me Novel #18

from Reset 2011. 6. 30. 22:24
J Nude, J가 맨션 근처의 폐허, 진 곳으로 나를 불렀다. 낡은 건물들이 부서져 있고 유리며, 깨진 나무 목재와 콘크리트 가루들이 쓰러져 있는 곳에서 J가 나를 불렀다. 펜트하우스가 보이는 타워의 꼭대기, 그 난간에 앉아, 내가 오지 않으면 그 아래로 떨어지겠다고 태연하게 말하며, 핸드폰을 아래로 떨어뜨렸던 그날의 J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너에게 일어났던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거야.'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너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거야.' 
'우리는 그런 바탕 위에 있어.' 

그 꼭대기에서 J에게 했던 말. 

그렇지? 누구나 꼭대기에서, 누군가 오지 않으면 떨어질 수밖에 없어, 라고 소리 내는 사람이 있을 테지?
그 꼭대기에서 J가 했던 말.

저만치서 J가 나를 부른다. 느린 오후, 이제 막 해가 지려고 할 무렵, magic happy hour 정도 되는 날, J가 더 느린 손짓으로 나를 부르며 내 쪽을 바라본다. J는 옷을 전혀 입지 않고, 조각난 돌무덤 같은 곳에서 일어선다, 나는, 그 모습을 한 손에 쥐고 있던 RETINA 3C 를 꺼내어 찍는다. 왜 그러는지, 나는, J의 몸에는 흙이 묻어 있고, J가 내게 말한다. 

내 몸을 찍어서 팔 거야. 얼마 정도 받을 수 있을까? 
아니 내 몸을 팔아서 사진을 찍을 거야. 그건 어느 정도나 받을 수 있을까?

언니, 가 나를 찍어주고, 그럼, 언니도 내가 찍어줄게. 호주머니가 없어서 엑스도 가지고 있지 않아, J가 웃는다.
모두 떠난 자리에 내가 있는 모습을 찍어 줘, 나는, 그 말에 아무 동요 없이 기계처럼 J의 모습을 카메라로, 나의 눈으로 찍어댄다. 그리고 J가 달려들어, 내 벗은 몸을 보려고 할 때,

언니, 도 벗어. 한 번도 언니, 의 벗은 모습은 보지 못한 거 같아.
J가 말한다.

......

침묵. 내가 말한다. J는 웃으면서, 내 옷을 벗기려고 한다, 나는 그런 J를 껴안고, 움직이지 말았으면, 하는 심정으로 J의 귓가에 말한다.

나는 벗을 수 없어.

나는 네게 내 모습을 보일 수가 없어. 내 몸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 (들)이 새겨놓은 무수한 푸른 반점들이 있어. 나는 그 사람, (들)의 바람대로, 어디서도 마음껏 옷을 벗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어. 이런 반점, (들)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 (들)을 만나기 전까지, 는 내 모습을 전혀 보일 수 없는 사람이 되었어. 그래서 더욱 나는 네 앞에서 내 모습을 보일 수가 없어, 네가, 그런 반점들이 신경 쓰여 나를 사랑해야 한다고 믿는 오류를 정정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내 모습을 네게 보일 수가 없어. 네가 사랑해야 하는 것, 이 내가 가진 반점 따위, (들)이 되어서는 안 되는 거야.

해가 질 무렵의 하늘은 무척 파랗다, 지는 해를 따라, 붉은색을 입에 물기 전까지의 하늘은 정말 파랗다. 옷을 입고 있지 않은 J의 등이 파래지고, J의 모습이 담겨 있는 RETINA 3C 의 black trim 도 파래져 간다. 그동안은 나 혼자만이 파래지지 않아서 좋았다. J의 등을 쓰다듬고 있는 동안의 나는 전혀 파래지지 못했다.

며칠 전에 J의 꿈을 꾸었다, J는 나를 만나면서, 세상이 곧 닫힐 거라고 말하고는 했다. 마치 나를 끌어안고 어딘가로 묻혀 버리기라도 할 듯이, 내게 말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매달려 있던 J가 사라졌다, 내가 J를 떠나왔고, 케이와 J를, 마치 조롱하듯, 그 사이에 나를 밀어 넣고, 그 둘의 모습을 관찰했다. 케이는 필사적이었다. J와 나 사이에서, 케이는, J에게, 
네가 행복해지는 것이 싫어, 라고 말했었다, 그렇게 내가 쓸모없어지는 것이 싫어, 라고. J와 나 사이에서의 케이.

그때 현상한 사진, J의 지독히 아름다운 때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속에서 무언가 말할 수 없는 것이 치밀어 올라, 어떤 말이든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된다. 


J, 그 말을 하려고 했어. 네가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않아도, 꼭 벗지 않더라도, 그렇게 관심을 끌지 않더라도 _ 무엇이든 잘하지 않더라도, 너는 충분히 사랑받을 만하다는 사실을 말이야. 어차피 푸른 반점 같은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이야기였어. 우리는 내가 가진 반점들로도, 네가 보여주었던 폐허 속의 웃음 띤, 너의, 나체로도 이어져 있지 않았어. 세상은 그렇게 연결되어 있지 않았던 거고, 그걸로 우리는 좋았던 거야. 

J, 는 그 사진을, 그때 가격으로 500원씩에 팔았다. 나도 그중 하나를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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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me Novel #17

from Reset 2011. 6. 8. 23:30
네 꿈을 꾸었어, J _ 이틀 전인가 낮잠을 자는 동안 꿈속에서 너를 만났어, 그날은 비도 오지 않고, 더군다나 며칠 동안 꽤 상쾌한 아침이었는데 말이야. 꿈속에서의 네 모습은 과거, 의 네 모습이었어, 나는, 잠을 깨고 나서도, 그러게, 꿈의 내용을 적어두지 않았어, 결국, 오늘에 이르러서야, 꿈속에서 너를 보았다는 사실 외에는, 거짓말처럼, 어느 것도 기억나지 않게 되었어. 마음만 먹으면 늘 같이 있을 수 있었던 대상, 상대로서의 J _ 언제나 나의 존재에 목을 매달고, 나의 부재에 격분하며, 노엽게도 슬퍼하며, 세상을 다 산 듯이 했던 J _ 희망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라고 말하며, 내 목덜미에 양팔을 걸고 언제나, 내 앞에서 노래 부르며 매달려 있을 것 같았던 J _ "J? 오늘에서야 알았어, 너와 내가 연결된 것처럼 세상은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야." 나는 그날 오후 J의 그림을 주문했다. 새 사무실에 걸어둘 그림을 주문하며, 잘 지내지? 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거기에 대한 J의 응답. "그럼, 잘 지내. 언니와 만났던 시간을 지우느라 늘 바빠. 언니도 잘 지내지? 날 버린 대가로 잘 지내고 있을 테지? 언니와 내가 연결된 것처럼, 다행스럽게도, 세상은 이루어져 있지 않았어. 세상은, 마음만 먹으면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여기던, 그 대상이 사라진 후에야 시작되나 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잠자리를 할 수 있는 상대가 사라지고 난 다음에 말이야."

그런 거야. 세상은 곧 닫히고 말 거야. 맨션의 꼭대기에서 J가 말했다. 무언가를 오물거리며, 잡지를 보면서, J는, 그래서 말인데, 라고 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긴 의자에 앉아 음악을 고르며, 무엇을 들으면 좋을까?, 라고 말했다. 결국 나는 DOORS 를 끄집어내었다, 닫힌 세상, 나의 세상, J가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만약 세상이 이렇게 언니와 나, 사이를 매듭짓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DOORS 의 'The End' 가 들려오길 기다리며, 그리고, 내가 말했다. "그러면 문이 열릴 테지?"

이방에서 일어나는 일이 앞으로 우리 인생을 결정지을 거야.
J는 방의 불을 끈다.
마치 맨션의 하룻밤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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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me Novel #16

from Reset 2010. 11. 22. 01:14

방에서 일어나는 일이 앞으로 우리 인생을 결정지을 거야.

J는 방의 불을 끈다.

마치 맨션의 하룻밤과 같다.


먼지 가득한 맨션의 제일 꼭대기 층에서 _ J가 파티를 하며 옷을 벗던 때의 모습과도 같이, J의 허리에는 잘록한 점들이 묻혀 있다, J는 그것들을 _ 내가 만든 것이라고 말하고는 했다.

‘맨션에 오지 않았다면 이런 점들도 생기지 않았을 거야. 언니와 같은 점들이 내 몸 안에 박히는 일 따위는 없었을 테니까.’


J와 헤어진 건 아주 오래전 이야기다. 나는 J를 맨션에 버려두고 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는 맨션을 떠나겠다고 했고, J는 맨션을 결코 떠나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더는 그곳에서 살기 어렵다고 말했고, J는 앞으로 무엇을 하든지 간에, 맨션에서, 나와 J _ 그리고 케이 _ 가 보내었던 시간이 내가 하는 일에 훼방을 놓게 될 거라고 말했다.


그러면 어떠니?

나는 차분히 앉아서 J를 바라보았다. 상관없어. 이방에서 일어나는 일이 앞으로 우리 인생을 결정지을 거야. 너를 만나기 전에도 나를 결정지었던 일들이 내 주위에서 일어나고는 했어. 나는 몹쓸 아이처럼 그것들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지. 그러나 돌이켜보면, 너로 인해, 그렇게 내 안에 무엇인가와 밀착되어 있는 것들이 ‘나’의 일부분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면 어떠니? 나는 ‘나’로 살아 있는 일 외에는 고민하고 싶지 않아. 너도 ‘나’의 일부로, 나도 ‘너’의 일부로 살아 있을 거야.


지금껏 J처럼 아름다운 몸을 가지고 있는 아이는 만난 적이 없다. 맨션에서 나체로 잠이 들 때의 J와 나는, J의 볼에 내 볼을 가져다 대고 비빌 때면, J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온기의 소리를 내고는 했다. 그 소리를 잊어본 적이 없다.


나는 삶이 아주 단순하길 바란다. 과거에 있었던 어느 하나의 사건이, 과거에 만났던 어느 한 사람이, 또는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어느 누군가로 말미암아 _ J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_ 앞으로의 인생이 결정되길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희망 같은 건 가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2010/11/19 - [어떤 날] - Pink or 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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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me Novel #15

from Reset 2009. 11. 23. 12:45
화장대 앞에 앉는다, 거울에 내가 비치고, 저 너머에 당신의 뒷모습이 비친다, 등마루, 등줄기를 따라서 아직 마르지 않은 물기가 흘러내릴 것 같다, 거울 앞에서, 나는, 클린징 솜으로 오일을 닦아낸다, 건조하고 매끈한 피부, 와 모공이 수축을 시작하고, 숨을 쉬는 것처럼, 나는 당신을 흘깃 보고, 당신은 커튼을 걷어낸다. 건물 아래로 기름기 없는 도시, 의 모습이 도로와 함께 나타난다. 저녁 먹을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나는, 눈을 찌푸리며, 거울을 본다, 스킨 토너의 뚜껑을 열고, 촉촉하고 맑은, 향이 나는, 토너를 얼굴에 바른다, 시트러스 향이 얼룩을 만들어 낸다, 그때 나는 무언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았어, 특히 케이가 J에게, 네가 행복해 지는 것이 싫어, 라고, 그렇게 내가 쓸모없어지는 것이 싫어, 라고 이야기했을 때, 그리고 J가 케이를 자신의 무릎에 눕히고, 혀로, 구토물로 범벅이 된 케이의 입으로 엑스를 밀어 넣어 주었을 때, 였어, 그 모습이 재미있어서, J에게, 앞으로 저런 애는 만나지 마, 라고 말하려고 했어, 그러면 케이는 폭주했을 테니까 더욱 재미있었을지도 몰라. 거절할수록 달려들었을 테니까 말이야. 그러면 네가 그렇게 하니까 만나지 말라고 한 거야, 라고 놀려주기도 했을 거야. 이상한 섬에서 나는 사내에게 그냥 벌레에 불과했었는데, 그 아이들 앞에서 나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관계의 주인공이 되어서, 외로움이니 이별이니 하는 이름 모를 대상이 되어 있었어, 내가 원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자기네들끼리 멋대로 정해 놓고서 말이야. 나는 그 둘의 관계를 망칠 수 있는 자리에, 나도 모르게 올라앉아 있는 기분이 되어서, 뭐든 해보고 싶어졌어, 나는, 로션을 바르고 수분에센스를 손으로 집는다, 당신은 그런 이야기를 듣다가 어느새 등 뒤로 와서, 란제리를 내게 보이며, 오늘은 이게 어때? 라고 묻는다, 그리고 등 뒤에 나 있는 푸른 반점을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듯이 누른다, 아파, 아파? 당신은 웃으면서 말하고, 나는 크림을 얼굴에 바르고, 스틱 파운데이션을 얼굴에 가져간다, 시트러스 향을 지우며, 윤기나는, 얼굴로 말한다, 응, 아파, J와 케이의 이야기야. 그리고 파우더를 묻힌다.

당신은 모던한 검은색의 핑크빛 레이스가 들어 있는 란제리를 내게 입혀준다. 블러셔로 얼굴의 빛을 내고 있을 때, 당신이 말한다. 넌 벌레도 특별한 사람도 아니야. 관계는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런 거지만, 벌레도 되고 특별한 사람도 되는 동시에 너는 될 수 없는 거야, 그건 내가 네 곁에 있기 때문에 네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런 너이기 때문에 내가 함께 하는 것도 아니야. 그냥 너야, 그런 네 곁에 내가 있고 싶어서 함께 있는 거야. 벌레도 되고 싶고 특별한 사람도 되고 싶은 너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 네 모습이 좋았어. 그런가? 아직 이상한 섬의 그 사내가 내 안에 살아 있는 것 같아, 가슴에 있는 푸른 반점을 문지르며 내가 말한다. 알아, 그렇다고 J와 케이에게 네 마음속 그 사내와 싸우라고 할 수는 없는 거야, 당신이 말한다. 그렇지? 내가 말한다. 나쁜 일은 너하고 나 사이에서만 있는 걸로 충분해. 당신이 말한다. 우리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은 무엇일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우리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은 뭘까? 내가 말한다. 사랑하는 것, 당신이 말한다. 당신의 그 말을 듣자,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린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멈출 수 없는 웃음을 참으며, 눈물이 날 것 같아, 나 같은 게, 그런 걸 할 수 있을까? 라고 말한다. 만약 모르면 물어봐, 나는, 그 대답을 네게 해 줄 수도 없고, 알고 있지도 않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면서, 조심스럽게, 나에게 물어봐. 그러면 어떻게든 될 거야. 기억해, 네가 누군가 절실히 필요했을 때 만난 사람이 너의 일부가 되는 거야. 당신이 내게 말한다, 나는, 아이라인을 마저 그리며 앉아 있고, 당신은 란제리의 나머지를 손에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보라는 손짓을 한다, 그리고 거울에서 당신과 나의 모습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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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me Novel #14

from Reset 2009. 11. 18. 07:41
언니, 여기 타워 꼭대기야, 저기 펜트하우스도 보여, 지금 난간에 앉아 있어, 여기는 바람이 많이 불어, 언니는 어디야? 여기에 앉아 있다가 언니가 오지 않으면, 뛰어내리려고 해, 바람 소리 들려줄까? J가 말한다, 태연하게, 타워 꼭대기에서 만들어내는 바람 소리에 J의 목소리가 탁하게 들린다. 무슨 일이야? 나는 들고 있던 전화기를 어깨와 머리 사이에 끼우고 오븐에 들어 있던 베이글을 꺼내면서 말한다. 잠에서 깨어나서 다시 한 번 더 지난밤에 내가 있던 다락방으로 가보려고 했어, 나쁜 꿈을 꾸고,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지금의 내 모습을 보고, 내 진짜 모습을 보고 나서 오들오들 떨면서 숨어 있던, 언니가 나를 찾아 주었던 다락방에 가려고 했었어, 언니가 잠들어 있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다락방으로 가려고 했었는데, 잠겨 있었어, 언니가 그런 거야? 그러니까 옛날에 언니가 맨션에서 엑스에 취해 있던 내 손목을 언니의 손에 묶고 밤을 보내었던 일이 생각났어, 손목이 시리고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 나서, 기억하지?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싶어졌어, 나를 찾으러 와, 여기에 오면 이곳에서 찍은 하늘도 보여줄게, 그렇지 않으면 여기서 뛰어내릴 거야, J? J의 전화기가 몇 초의 침묵과 바람 소리, 에 섞여서 타워의 꼭대기에서 아래로 떨어진다, J가 전화기를 타워의 꼭대기에서 아래로 떨어뜨린다, J의 전화기는 마치 음반이 튈 때 나는 소리를 내며 부서지고, 나는, J를 부르는 소리가 도로의 바닥에 깔린다, 그러자 J가 난간에 앉아 있고, 타워의 하늘을 바라보면서, 텅 빈 눈이 되어, 마치 J의 눈이 지평선처럼 반짝이는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반으로 나누어진 베이글을 접시 위에 올려놓고, J의 외투를 손에 들고, 드레스룸으로 들어가서 거울을 보고, 머리를 J처럼 묶을까, 를 생각하다가 옷을 갈아입지 않고, 나와서, 하이힐과 스니커즈 중에서 무엇을 신을까, 를 고민하다, 스니커즈를 신고, 집을 나선다, 커피가 마시고 싶어, 더블 톨 라테를 사서 양손에 들고 타워의 꼭대기로 향한다. J의 외투가 팔에 위태롭게 달려 있다.

J는 타워의 꼭대기 난간에 앉아 있다, 장난스럽게 낡은 목측식 카메라의 장식처럼 달린 뷰파인더로 하늘을 보면서, 나는 멈춤 동작 없이 J를 부르지 않고, J와 함께 난간에 앉는다, 더블 톨 라테의 하나를 J에게 건네어 주고, 외투를 J에게 덮어주고, 더블 톨 라테를 한 모금 마신다, J는 나를 신경쓰지 않고 한참 동안 하늘을 올려다보다 카메라를 내려놓는다, 언니가 올 줄 알았어, 언니가 나를 이런 위험에서 구해줄 줄 알았어, 다른 사람이 아닌 언니가 그렇게 해줄 줄 알았어, J가 말한다, 아침에 먹으려고 베이글을 준비하고 있었어, 어제 잠은 잘 잤어? 이 난간에 앉은 적이 있어, 여러 번, 나도, 네가 무언가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이해해, 몇 번이라도 네가 이런 곳에서 내게 전화를 하면 나는 매번 널 찾아서 올 거야, 그렇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해 두고 싶어, 마음은 전해지기 마련이야, 네가 나에게 무엇인가를 위험하게 확인하고 싶다면, 나도 너를 통해 무언가를 확인하고 싶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관계는 확인하려고 하면 할수록 알 수 없게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니었을까? 알고 있지? 너에게 일어났던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거야,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너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거야, 우리는 그런 바탕 위에 있는 거야, 내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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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olet

from 어떤 날 2009. 11. 18. 07:37

이곳에서 하늘을 찍은 사진도 보여줄게, 나를 찾으러 와, J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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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me Novel #13

from Reset 2009. 11. 13. 08:27

나는 네가 행복해 지는 것이 싫어. J가 가자고 하니까 여기까지 따라왔어, 집에 있는 턴테이블이며 스피커를 함께 훔쳐서 가지고 오기도 했어, 그렇지만 나는 네가 행복해 지는 것이 싫어, 저기 두꺼운 판자로 창에 못질해 둔 것도 이렇게 앉아서 치즈 케잌을 먹고 있는 것도 그래, (케이), 생각해 보면 그렇잖아, 나를 찾아와서 몸에 푸른 반점이 있는 언니를 만났어, 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할 때부터 불안한 기분이 들었어, 저 언니 어디가 좋은 거야? 잊었어? J, 네가 집을 나왔을 때 먹을 것을 구해주고 잘 곳을 마련해 준 것은 나였어, 네가 힘들 때마다 네 고민을 들어준 것도 나였어, 그런데 아직 그런 은혜에 보답하지도 않고,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저런 언니를 위해서 네가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 마음에 안 들어,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옷도 네가 골라준 거잖아, 언니에게 예쁘게 보여야 한다고 하면서 말이야, 싫어, 저 언니 없이도 잘 살아왔어, (케이), 처음 네게 엑스를 가져다 준 것도 나였어, 너는 이런 거리에서 방황하며 어려운 일이 있으면 내게 찾아와서 이야기하고, 그런 너를 나는 위로하고 조언하면서 우리는 얼마든지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어. 너는 행복해 져서는 안 돼, 계속 불행한 채로 있으면서 필요할 때마다 나를 찾아와서 네가 가지고 있는 고민들을 모두 말하고, 내가 하자고 하는 대로 해야만 했어, (케이), 그냥 돌아가자, 응? 이런 곳에서 살지 마, 언니 같은 것은 잊고 예전처럼 둘이 그렇게 지내, 네가 원하는 것이면 다 들어줄게, 네가 행복해 지지 않을 때에만 나는 혼자가 아닐 수 있어. (케이) 나는 혼자가 되는 것이 싫어, 네가 저 언니와 행복해 지는 것이 싫어. 그렇게 내가 쓸모없어지는 것이 싫어. 케이는 바닥에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그리듯이 하며,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럴 때마다 J는 한 번씩 케이, 라는 이름을 의미 없이 말하고, 마치 그래서? 라는 억양과 음색으로, 케이가 하는 말에 장단을 맞추어 주듯, 케이, 라고 말한다. 얼마 안 있어 케이는 어깨를 들썩인다, 소리 없이 크게 운다. 그리고 바닥에 무엇인가를 그리던 손가락을 입 안 깊숙이 넣어서, 토한다. (케이) 미안해, 이런 말 해서, 언니에게도 미안해요, J, 미안해,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게, 용서해 줘, 나를 버리지 마. 케이는 침을 흘리면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질 것처럼 흔들린다, 악취가 나기 시작한다, 케이의 눈이 풀린다, 케이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라는 시늉을 하듯, 앞으로 쓰러질 것처럼 된다. 그런 케이의 어깨를 J가 감싸고, J는, 입 안에 있던 치즈 케잌을 삼킨다, 그리고 케이에게 입맞춤을 한다. 케이의 혀가 길게 늘어진다. 탐욕스럽고 외로운 혀가 J의 입 안에 가득하다. J는 케이를 자신의 무릎에 눕힌다. 오기 전에 엑스를 먹였어, 그리고 우유도 먹였어, 그러고 나서 치즈 케잌을 먹게 되면 이렇게 되는 거야. 속이 메스껍고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하면 지독히 외로워져서 견딜 수가 없게 돼. 앞으로 여기서 살 거야, 케이가 나를 보려면 여기로 와야 해. 그래서 데리고 왔어. J는 입 안의 엑스를 넣었다가, 혀로, 케이의 입 안으로 엑스를 넣어 준다. 케이는 마치 작은 사탕을 삼키듯 엑스를 입 안에서 녹인다. 케이가 그랬어, 갈 곳 없는 사람들만이 이별 앞에서 눈물을 흘릴 수 있다고, 그 값어치를 알아야 한다고 말이야. J가 말한다, 케이, 이 언니가 나를 관찰해 줄 거야. 자신을 위해주고 아껴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옆에 있게 되면 그때부터 세상은 끝이 나는 거야, 그러니까 관찰해 주는 사람이 있는 동안은 결코 잘못되지 않을 거야, 케이, 너는 나만 지켜보면 돼, 그런 나를 이 언니가 관찰해 줄 거야, 맨션의, 판자로 막힌 문 없는 창 사이로 햇살이 뿌려지고, 케이 주변의 먼지가 깃털을 달고 황금빛으로 변한다. J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한다. 아무래도 저기 저 판자는 떼어버려야 할 것 같아, 케이가 싫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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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me Novel #12

from Reset 2009. 11. 8. 09:00
그늘이 진다, 맨션 안으로 햇살이 들어오면서 만들어 내는 먼지들이 그늘로 떨어지는 것을 바라본다, 나는, 어둠이 들어찬 곳으로 매트리스를 옮겨서 눕는다. '언니에게 일어났던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거야,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언니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거야.' J가 한 말을 생각하며 천장의 먼지 너머로 떠있는 J의 표정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케이, J가 말한다. 낯선 여자애와 함께, J는 맨션으로 들어온다, 나는, 천정에 있던 J의 얼굴을 그대로 가져다 (또) J에게 씌운다, 오차가 생기고 얼굴의 남아 있는 부분들이 옅은 점처럼 퍼져 사라지는 것이 보인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건 저런 것들뿐이겠지? 라고 나는 생각하고, 눈을 깜박이며, 왔어? 라고 J에게 말한다. 며칠 동안 J는 아주 분주했다. J는 맨션으로 무엇인가를 계속 가지고 오고, 나는 여러 번 앉은 자리를 비켜주어야 했다. J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맨션의 문 없는 창을 두꺼운 판자로 막는 일이었다. 왜 그러는 거야? 이건 막아두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안전하지가 않아, 어릴 때 아주 큰 창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한 적이 있었어, 늘 밝은 햇살이 집안으로 들어왔었는데, 그 탓에 지금 이렇게 되어 버렸어, 그렇게 생각해, 그런 집이 없었다면 나는 버려지지도 않았을 거야, J는 진지하게 큰 판자를 아무렇지 않은 듯 끌고 가서 못질을 한다, 그 틈새의 먼지들이 J의 머리 위에 내려앉는다. 이쪽은 케이라고 해, 나하고 가장 친한 친구야, 여기는 이야기했던 언니야, 안녕하세요, 케이? (여기는 왜?) J를 보며 내가 말한다. 케이는 치즈 케잌을 들고 J의 뒤에 선다. 앞으로 여기서 살 거니까, 그래서 데리고 왔어. J는 케이의 집에서 가지고 온 것이라고 하며, 10호 캔버스 크기만 한 턴테이블을 손에 들고 있다. 케이는 그런 J의 뒤에 치즈 케잌을 들고 서 있고, J는 턴테이블을 매트리스 위에 내려놓고, 케이는 치즈 케잌을 내게 건네어 주고, 조금만 있어, 라고 J가 말하더니 케이와 함께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꼭 Beolab5 처럼 생긴 스피커를 하나씩 들고 나타난다. 케이의 집에 도둑이 들었지 뭐야, J가 태연하게 말하고, 케이는 J의 뒤에 고개를 숙이고 선다. 케이, 저기에 놓자, J가 말하고 케이가 그 뒤를 따른다, 턴테이블에는 Curtis Fuller의 Blues-Ette가 올려져 있고, Love Your Spell Is Everywhere, J와 케이와 함께 치즈 케잌을 나누어 먹는다, 메인 테마가 끝나고 Benny Golson의 테너 색소폰이 계단을 올라가듯 격앙되고 따뜻한 분위기를 이끈다. J는 치즈 케잌을 오물거리면서 케이에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 남성을 쫓아 버렸던 일을 이야기하고, 케이는 두세 번은 같은 이야기를 들었던 것처럼 치즈 케잌을 입 안에 넣고, 그랬어? 라고 말한다. 케이는 마치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J의 옆에서, 마린블루색의 청바지와 하얀 그래픽티셔츠를 입고 있다, 음악이 끝나고, 턴테이블 위의 픽업을 케이가 손으로 집으려고 할 때, 케이에게서 No.5와 같은 플로랄 향이 난다, 지금 상황과 다른, 그리고 케이는 자연스럽게 J와 눈을 마주치고 J에게 다가가 눈을 감고 J의 목을 감싸며 입을 맞추려고 한다, 그러자 J가 얼굴을 피하고, 치즈 케잌 먹어, 라고 말한다, 케이는 다시 J에게 입을 맞추려고 하고, J는 그만둬, 라고 하듯이 케이를 옆으로 살짝 밀친다, 케이, 플로랄 향이 베이비향으로 바뀔 때, 케이가 말한다, 확인하고 싶어, 이 언니 때문에 우리 사이가 망가지는 것이 싫어, 이 언니 때문에 네가 행복해 지는 것이 싫어, 그렇게 내가 쓸모없어지는 것이 싫어. 판자로 막힌 문 없는 창 사이로 햇살이 뿌려지고, 케이 주변의 먼지가 깃털을 달고 황금빛으로 변한다, 케이는 진심이 된다. 나는 J, 네가 행복해 지는 것이 정말 싫어. 케이, J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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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me Novel #11

from Reset 2009. 10. 29. 04:54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 나는 침대 위에 엎드려, 찢어진 소설책, 의 여백에 메모를 하며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다, LES MISERABLES, 나는 도망칠 수 있을 만큼 안전해질 수 있을까? _ 당신은 크리스털 마운틴을 드립하며 J와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을 내게 묻는다, 당신이 나를 구해주었던 곳 있지? 거기에 나는 숨어 있었어, 이상한 섬에서 도망쳐 나와서는 어디로 가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곳에 숨어 있었는데, 거기서 J를 만났어. 지방 소도시의 유흥가였어, 붉고 푸른 등을 단 가게들이 끝나는 어느 모퉁이에서 J가 먼저 내게 말을 걸어왔었어, 얼마야? 라고 했던가, 그래서 하마터면 500원이라고 말할 뻔했지 뭐야, 당신은, 큰일 날 뻔 했네, 라고 말한다. 그렇지? 내가 말한다. 그리고? 그리고 내게 갈 곳이 없다고 말하고 하룻밤을 재워달라며 나를 따라왔었어. 처음 보는 나에게 얼마나 이상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지 싸구려 엑스를 너무 먹어서 그런가, 라고도 생각했어, 자신을 위해주고 아껴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옆에 있게 되면 그때부터 세상은 끝이 나는 거야, 라든지 갈 곳 없는 사람들만이 이별 앞에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거야, 라든지 내 얼굴을 빤히 보면서,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을 가지고 있지 않아, 라는 따위의 말을 했어. 그러다가 뭐라고 했더라, 자신을 관찰해 달라고 했던가 그랬어, 외로웠나 봐? 당신은 시고 단맛이 나는 커피를 들고 내게 다가오며 말한다, 글쎄, 당신에게 묻어 있던 커피 향이 퍼진다, 귀가 가렵다, 당신이 앉은 쪽으로 침대가 기울고, 나는 메모를 멈춘다, 책을 덮고,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었어, 관찰해 달라니 뭘 말이야, 라고 생각했어, 그 다음 날 밤에는 어느 남성과 함께 와서 조금 소란했었어, 내가 보는 앞에서, 내 눈을 빤히 보면서, 그 남성과 놀아나려고 해서, 뭐 하는 거야, 라고 생각하며 떠나려는데, J가 그런 나를 따라오고, 그 남성이 J를 따라와서 J의 머리채를 잡고, 때리고, 그런 모습을 보았어, 내가 바라봐야만 했던 것은 이상한 섬에서의 사내였는데, 사내는 몹쓸 짓을 나에게 참 많이 했거든, 그래서 매일 긴장하면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 사내를 보면서, 그 사내라면, 이라고 열심히 상상해야만 했어, 그러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그 남성이 J에게 하는 행동이 사내가 나에게 하던 것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남성을 위협해서 쫓아 버렸어. 순간 그 사내처럼 되었어? 응. 그 뒤로 그곳에서 J와 살았어, 그런데 그 후로도 말썽이 많았어, J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하며 한 명을 더 데리고 왔었고, 나는 몸에 푸른 반점이 있는 아이로 소문이 나서 마치 구경거리가 된 것처럼 J와 같은 아이들이 나를 많이 보러 왔었어. 그리고 너는 J를 관찰하기 시작한 거야? 당신이 말한다. 그러긴 했어, 그렇지만 정말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해서 J가 가르쳐 주고는 했어, 하지만 나에게 누군가를 관찰하는 능력이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J가 하는 말은 무언가 필사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고 인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어, 나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순간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일을 시작한 것인데, J는 그런 느낌을 내게 주지 못해서, J를 상대로 어떤 실험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 당신은 엎드려 있던 나를 바로 눕히고 귀에 입맞춤한다, 커피 향이 나, 당신이 말한다, 나는 당신의 목을 팔로 감싼다, 눈을 감고, 그래서 사내가 나에게 했던 대로 J에게 하고 싶어졌어. 네가 떠날 때 J가 그렇게 울고 했던 게 그 이유 때문인 거야? 당신이 묻는다, 아니 J는 갈 곳이 없었어, 그래서 운 거야, 그럼 너는? J가 원하던 대로 관찰해 주었을 뿐이야, 눈물이 날 것 같아, 내가 벗을게, 라고 당신에게 내가 말한다.

2009/06/24 - [어떤 날] - Lo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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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me Novel #10

from Reset 2009. 10. 27. 00:24
맨션의 매트리스 위, 나는, 배낭을 연다, 젖은 신문과 찢어진 소설책과 노점에서 훔친 귤과 선글라스와 리본이 달린 인형과 립스틱과 아이섀도우가 들어 있다, 나는, 매트리스 위에 쪼그려 앉아 찢어진 소설책의 여백에 메모를 한다, 맨션에 들어온 지 한 달째, 언제쯤 나는 도망칠 수 있을 만큼 안전해질까? J가 돌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무슨 생각이지? 헤드라이트를 켠 검은 색 승용차가 맨션 앞에 도달하더니 J와 어느 남성이 모습을 보이고, 파티장에 있는 것처럼 떠들면서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여기가 어디야? 맨션, J는 마치 내가 이야기를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를 낸다. 여기서 뭐하게? 밖도 나쁘지 않아, J가 말한다. 남성은 짙은 바지에 흰색 운동화를 신었고 무지갯빛 점퍼를 입고 야구 모자를 쓰고 있다, 남성은, 양 귓불에 10원짜리 동전 1/4 정도 크기의 큐빅이 박힌 귀걸이를 하고 있다. J는 메이즈메이의 것과 비슷한 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하얀색 스니커즈를 신고 진한 검정 색 가발을 쓰고 있다, 원피스의 어깨가 가발로 덮여 있다. 저기에 누가 있어, 신경 쓰지 마, 누가 있다니까, 누가 보면 어때? 우리 사이에 상관없잖아. 둘은 내가 앉아 있는 앞을 지나, 부둥켜안고, 달빛이 잘 비치는 곳으로 향한다, 나는 메모하던 소설책을 배낭에 집어넣는다, LES MISERABLES, 둘은 입맞춤을 하고, J는 그러면서 나를 본다,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른다, 나는 배낭을 닫고, 무엇을 하냐는 듯이 J의 입술 모양을 따라 한다, 눈을 크게 뜨고, 남성이 J의 원피스를 벗긴다, 지퍼를 열고 남성이 J의 어깨를 쓰다듬자 하늘색 원피스는 힘없이 J의 나체를 드러내고 떨어져 내린다, 아름답다, J의 몸은 아름답다, J는, 속옷을 무엇도 입고 있지 않다, 남성이 J를 품에 안고 있는 내내 J는 나를 쳐다본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라는 듯한 얼굴로 내 모습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바라본다, 맨션 안의 공기가 점성을 가지고 흘러내린다. 몸이 아프다, 어깨에서 목덜미를 지나 뒷머리까지 닿는다, 통증은, 남성은 점퍼에서 엑스 두 알을 꺼내어 자신이 하나를 먹고 하나는 J의 입 안으로 넣어준다, J는 혀를 내밀어 그것을 올려놓고 장난치듯이 한 바퀴 돌리고 나서 목안으로 삼킨다. J는 남성의 바지를 내리고 남성 앞에 주저앉으려고 한다, 그러면서도 J는 나를 응시하고 있다, 마치, 이건 모두 언니 때문이야, 라고 하는 듯한 눈으로 남성의 벨트를 푼다, 나는, 배낭을 메고, J를 한번 보고, 나는 이제 여기 오지 않을 거야, 라고 들리지 않을 듯한 음성으로 J에게 말하려다 말고, 뒤돌아서서 맨션의 계단을 내려간다, 계단을 다 내려올 때쯤 위층에서 J의 소리가 들린다, 잠깐 있어봐, 언니가 가려고 하잖아, 나는, 계단을 모두 내려와 맨션과 이어져 있는 길로 들어선다, 논과 같은 공터가 있고, 아카시아와 코스모스가 솜털처럼 공중에 매달려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때, 뒤에서 J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언니, 어디 가는 거야? 뒤돌아서려다 그만두고 다시 걸으려고 할 때, 정말 나를 저런 녀석과 함께 버려두고 갈 거야? 라고 소리친다, J는, 나체로 내 뒤를 쫓아온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춘다, 나는, J가 하는 말을 어느 것도 이해할 수 없다, J는 숨을 헐떡이며 나체로 내 앞에 선다, J의 나체는 아름답다, 무슨 말이야?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니야, 그냥 어젯밤에 네가 나를 쫓아온 거야, 난, 너와 엮이기 싫어, J는 자신의 오른 손목을 내민다, 이래도? 지난밤에 생긴 상처를 보인다, 그건 네가 엑스를 먹고 하이(high) 상태에서 무슨 짓을 할지 몰랐기 때문에 그런 거야, 됐어, 그냥 쟤랑 놀아, 나는 돌아선다, 언니 가지마, J가 소리친다, 있는 힘껏, 듣기 싫은 목소리를 내며, 그 순간 남성의 소리가 들린다, 뭐 하는 거야? 사람을 가지고 노는 거야, 뭐야, 이리 와, 남성은 J를 끌고 다시 맨션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나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J가 자초한 일이야, 뭐하러, 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는 동안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이거 놔, 언니가 가잖아, 이거 놓으라고, J가 소리친다, 웃기고 있네, 남성이 말한다, 아 -, 앙칼진 J의 비명이 들린다, 반사적으로 돌아보았을 때, 남성은 J의 가발을 벗기고 J의 머리채를 잡고 J의 뺨을 때리고 있다, 배를 발로 걷어차며, J의 나체는 남성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고, 남성은 J를 어깨에 둘러멘다, 낯익은 모습이다, 이상한 섬에서 사내가 나에게 하던 행동과 같다, J는 힘없이 축 늘어져 남성의 어깨에 매달려 있다, 곧 있으면 맞은 상처와 맞물려서, J는, 하이로 갈 것이다.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든다, 이상한 섬에서 사내가 나에게 하던 행동을 저 남성이 J에게 하고 있다, 그러니까 송곳니라도 드러내고 싶은 심정이 된다, 나는, 나도 모르게 배낭과 윗옷을 벗는다, 되도록이면 침착하게, J를 어깨에 메고 있는 남성에게 걸어가며 벗은 내 몸을 훑어본다, 푸른 반점이 일그러진 채로 퍼져 있다, 잠깐 거기에 서 봐, 남성에게 말한다, 남성은 이건 또 뭐야, 라는 모습으로 돌아서 나를 본다, 남성은 나보다 10cm는 더 커 보인다. J가 매달려 있다, J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려고 한다, 남성은 웃통을 벗고 있는 나를 본다, 나는, 남성이 보는 앞에서 브래지어를 끄른다, 몸의 푸른 반점들이 더 선명해진다, 사실 내가 몹쓸 병에 걸려 있어서 말이야, 이게 전염도 가능해, 지금부터 나는 최선을 다해서 네 몸을 물 거야, 그러면 이런 반점들이 너도 머지않아 생기게 될 거야, 그러니까 내려놓고 그냥 가, 남성은 이런 미친, 이라는 얼굴빛으로 무슨 얘기인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멈추었다가 J를 내려놓고 J에게 침을 뱉고, 재수가 없으려니까, 라고 말하며 자신의 검은 색 승용차로 돌아가 시동을 건다, J는 일어나 돌멩이를 집어서 남성의 승용차로 던진다, 남성이 떠나고 J와 나만 남겨진다, J의 나체를 일으켜 세우자, J가 말한다, 언니 옷 입어, J는 내 몸에 나 있는 푸른 반점을 들여다본다, 언니가 나를 구해줄 줄 알았어, 나는 아무 값어치가 없어, 내 값어치를 매겨줄 사람이 없어, 나는, 내 벗은 옷을 들어 J를 가린다, 그래서 언니가 나를 관찰해 주었으면 했어, 엑스를 아무리 먹어도 매일 다른 남자들과 잠을 자도 나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어, 이제 이런 일을 끝내고 싶어, 그래, 알았어, 그만 들어가, J를 데리고 맨션으로 향한다, 배낭을 다시 메고, 브래지어를 손에 들고, 옷으로 J를 가리고, 그런데 나는 언니에게 줄 게 없었어, 내가 언니에게 줄 수 있는 건 이런 것들뿐이야, 이것 봐, 언니에게 일어났던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거야,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언니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거야, 언니가 물었잖아, 나를 관찰해 주면 언니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내가 언니에게 줄 수 있는 건 이런 것들밖에 없어, 나는 갑자기 가던 걸음을 멈춘다, 이상한 섬에서 사내가 나에게 했던 행동이 마치 낡은 타자기로 활자를 찍어내는 것처럼 떠오른다, 푸른 반점, J의 얼굴을 본다, 동공이 열려 하이로 넘어가고 있다, J는, 무거워진다, 그래, 네가 원하는 대로 해, 그렇지만 한가지는 명심해 둬, 연애는 안 돼, 너하고 연애는 하지 않을 거야, 사랑으로 치닫는다는 건 다시는 예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니까 말이야, 변한 모습을 책임지는 것은 각자의 몫이야, J는 꿈을 꾸는 듯 내 손을 움켜쥔다, 이 손 놓지 마, J가 말한다, 나는, J에게 들리지 않게, 넌 곧 후회하게 될 거야, 라고 말한다.

2009/07/28 - [어떤 날] - Sp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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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me Novel #9

from Reset 2009. 10. 22. 23:10
언니가 나를 관찰해 주었으면 했어. 무슨 말이야? J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낸다. 맨션의 문 없는 창으로 햇살이 뿌려지고, 먼지는 깃털을 달고 황금빛으로 변한다. 나는 먼지를 손으로 가리며 묻는다. 어제 언니의 모습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어, J가 말한다, J는 헐렁한 바지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어디 갔지? 하는 표정으로 자세를 낮추어서 무엇인가를 찾는다, 나는, 저기에 있어, 라는 손짓으로, 지난밤에 모래를 파고 엑스를 묻어두었던 곳을 가리킨다, J는, 조심스럽게 엑스를 끄집어내어 휘파람을 불 것 같은 입 모양으로 모래를 날려 보낸다. 갈 곳 없는 사람들만이 이별 앞에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거야, 그런데 언니는 그런 표정이 어울리지 않아, 갈 곳 없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표정을 가지고 있지 않아. 지난밤의 일을 떠올린다, 이별의 순간, 버스 정류장에서 보았던 어느 여성의 모습을 따라서, 그 여성의 입 모양을 유심히 보며, 그 여성이 하는 흉내를 내었다. 갈 곳이 없어. J는 모래를 벗은 엑스를 호주머니에 넣으며 내게 다가온다, 나는, 피로 엉겨 붙은 빨랫줄과 같은 끈이 떨어져 나간 손목을 만지며 말한다, 무슨 말이야? 어젯밤 했던 것처럼 언니가 나에게 해 줘, 내 모습을 볼 수 있게 해 줘, 나를 관찰해 줘, J가 말한다, 내 앞에 서서, 나는, 알 수 없는 아이, 고개를 잠시 떨어뜨리고, J의 시선을 피해서, 관찰해 달라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관찰해야만 했던 것은 이상한 섬에 있던 사내였다. 사내는 내게 무슨 짓을 할지 몰랐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사내의 입장에서 생각해야만 했다, 싫어, 내가 왜 그렇게 해야 해? 내가 말한다. J는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라도 들은 듯, 부탁해, 언니, 라고 하며 내 앞에 무릎을 꿇는다, 내 손을 잡고, 나는, 손을 뿌리치면서, 왜 그러는 거야? 라고 말한다. 사람은 관찰하는 누군가가 있을 때에만 완전해 질 수 있어, 나는 내 모습을 볼 거야, 언니를 통해서, 그러자 J의 모습이 갑자기 투명해 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렇게 이야기할 때의 J의 모습은 벽의 일부나 바닥의 일부가 된 것 같다, 맨션의, 그러면 무엇을 해 줄 거야? 내가 그렇게 해주면 넌 무엇을 해 줄 거야? 내가 말한다. J는 흠칫 엑스가 들어 있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려고 한다, 나는, 소용없어, 라는 얼굴짓을 한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치마를 가지런히 하고, 머리를 풀었다가 다시 묶고, 얼굴을 양손으로 한번 비빈 뒤에, 계단이 있는 쪽으로 향한다, J가 말한다. 후회하지 않을 거지? 그 말을 무시하고, 나는, 계단을 내려간다. J가 하는 이야기를 흉내 내며, 후회하지 않을 거지? 절박한 느낌이 양손에 쥐어진다, 불행해, 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날 밤, J는 검은 색 승용차를 탄 어느 남성과 함께 맨션으로 돌아왔다, 늦은 밤, J는 마치 내가 벽의 일부나 바닥의 일부인 것처럼, 맨션으로 어느 남성과 함께 큰 소리를 내며 7층까지 올라온다.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봐.


                

2009/09/22 - [글쓰기] - Dime Novel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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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ht Micrograph

from 어떤 날 2009. 10. 15. 04:34

첫 소설의 모티브가 되었던 것, 당신이 내게 알려주었던 것, 기억해. (C: collagen fibers, E: elastic fib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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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Station

from 글쓰기 2009. 9. 23. 23:09

몇 번씩 이곳을 떠나고 싶었어. 당신은 망설이지 말라고 내게 말했고, 나는 바보처럼 1초만 더 안아 줘, 라고 당신에게 말했어, 나는, 당신이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을 마치 세상이 끝난 것처럼 여겼고, 이제 사람은 믿지 못할 것 같아, 라는 마음으로 지내었어, 그래서 (늘) 여기에 서면 이곳을 떠나고 싶어졌고,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지 못했어, 그때는, 쓰레기 같은 내 소설들과 그림들을 부둥켜안고, 당신 없이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어, 라고 당신에게 말했어, 그 모습이 눈에 선해서 지금도 밤이 되면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져. 알지? _ 얼마 전부터 글을 쓰고 있어, 다시, 당신이 나를 구해주었던 맨션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어, 마치 오래되고 낡아서 기분 나쁜 필름을 되감기 하는 기분이지만 나쁘지 않아, 그동안 나는 부단히도 열심히 무엇인가를 reset 하려고만 했었는데, 어느 날, 저곳에서 멍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동안, 그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알지? 나에게 글 읽는 법과 쓰는 법을 가르쳐 줘서 고마워, 당신도 보면 금방 알게 될 거야, 내가 말하는 방식은 당신이 가르쳐 준 그대로야. 어디서든 이 글을 보게 되면 연락해, 나는, 아직 그 곳에 살고 있어. 내가 당신을 버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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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me Novel #8

from Reset 2009. 9. 22. 07:18
맨션은 도시의 언덕 위에 있었다. 그 붉고 푸른 등을 단 가게들이 끝나는 모퉁이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_ 오르막을 걸어 직선거리로 약 200m 쯤 가면 도달할 수 있는 곳, 길목에는 논과 같은 공터가 있고, 아카시아와 코스모스가 솜털처럼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손을 뻗으면 부드러운 감촉이 손바닥을 타고 가슴 아래까지 닿았고, 걸을 때마다 차가운 공기가 다리 사이를 지나 목덜미까지 올라왔다, 이런 곳에서 치마를 입고 다니는 것은 위험해, 주위는 온통 어둠뿐이었고, 밤이 깊어도 불이 켜지지 않는 건물들이 줄 서 있었다. 그러면 달빛이 유난히 밝아지고, 주위의 건물들이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내게 말을 걸어왔다, 돌아가, 여기는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나는 조용히 나에게 속삭였다, 나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면 조용히 하고 있어 _ 맨션은 7층 높이에서 멈추어 있었다, 거푸집 공사를 마치고 _ 그 해에는 건설회사가 망하면 다음에 정권이 바뀐다는 말이 나돌았고, 실제로 다음 해에 정권이 바뀌었다. 한쪽에는 쓰다 남은 목자재들과 콘크리트, 시멘트 등이 놓여 있었고, 남겨진 벽돌들 사이로 이름 없는 잡초들이 돋아나 있었다. 나는 이상한 섬에 끌려들어갔다 도망쳐 나와서, 그 도시의 맨션에 숨어 있었다, 그러던 중에 J를 만났다. J는 갈 곳이 없다, 고 하며 나를 따라왔고, 호주머니에 포장되지 않은 엑스를 가지고 있었다, 배꼽에는 피어싱을 하고 있어 가끔씩 달빛에 반짝였다. 나는 엑스를 먹지 않았고, J는 엑스를 혀끝으로 살금살금 돌리다 삼킨 뒤, 세상의 끝에 대한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그때 J의 모습은 아무래도 순수해 보였다. 그 어둠 속에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그 모습에, J의 손을 내 손에 묶었다, 이상한 섬에서 사내가 나에게 하던 방식 그대로, J를 나와 연결

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J는 거의 알 수 없는 몸짓으로 자신의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나머지 엑스를 찾으려고 애썼고, 그 모퉁이에 같이 있던 동료들의 이름을 부르며, 내건데 가져가 버렸어, 만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라는 따위의 말을 했다, J는 거의 필사적으로 나체가 되려고 애썼고, 곧 온 몸에 땀을 흘리며, 목이 마르다는 손짓으로 목과 어깨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한 손으로 주워온 매트리스를 있는 힘껏 잡아당기며 버텼고, 다른 한 손으로는 J의 손을 잡았다, J가 그런 나를 벗어나려고 애쓰는 바람에, 나는, 손목이 벗겨질 정도로 상처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손은 놓지 않을게.' _ 이런 거짓말을 생각하며, 이상한 섬에서 사내가 나에게 했던 그대로 J에게 했다, 손을 묶고, 다음 날 J와 나는 거의 녹초가 되어서 오후 늦게까지 잠들어 있었다, 맨션의 문 없는 창으로 햇살이 뿌려지고, J와 나는 늙은 매트리스 위에 아무렇게나 누워 있다 깨어났다, 손목에 피가 엉겨 붙어 있어, J는 잠에서 일어나 나를 보고는 놀라더니, 어제의 기억을, 얼굴을 문지르고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면서 찾아내어, 나를 보면서 물었다, 이게 뭐야, 손을 들어 보이면서, 나는 J의 등을 만졌다, 마치 어젯밤 J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젖어 있었다, 값어치가 없다고 했잖아, 무슨 상관이야? 내가 대답했다, 그런가? 피로 엉겨 붙은 빨랫줄과 같은 끈을 떼어내며, 따가워, J가 대답했다, 그러다 J는 무언가 생각난 듯 내 얼굴을 가까이 다가와 쳐다보았다, 그래 이것 봐, 역시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을 가지고 있지 않아, 내가 옳았어, 그런데도 어제는 그런 표정을 잘도 지었단 말이지, J가 말했다, 앞으로 여기서 살 거야, J는 먼지를 털어내며, 언니가 나를 관찰해, 어젯밤 언니는 누군가를 관찰하고 그걸 내게 보여준 거야, 그렇지? 이별의 순간, 그 모습을 보고, 언니가 나를 관찰해 주었으면 했어. 

2009/09/19 - [글쓰기] - Dime Novel #7
2009/10/22 - [글쓰기] - Dime Novel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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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me Novel #7

from Reset 2009. 9. 19. 00:54
그런 생각이 든다,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볼까? 라고 J에게 말을 하는 동안, J를 처음 보았을 때 _ 맨션에서 J와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이 났다, J는 나에게 건네어 주려던 엑스를 복용하고, 맨션까지 나를 따라와, 어둠과 달빛만이 남아 있는 곳에서, 옷을 벗고, 피어싱을 한 배꼽, 을 드러내고 춤을 추려고 했다, 동공이 풀려서, 더 이상 외부 세계에 대한 정보를 자신을 위해서 해석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나는 J의 손을 내 손에 묶어 연결시켜 두었다. J는 말을 이어 나갔다, 갈 곳이 없다는 것은 핑계였어, 나와 자려고 하는 사람들은 많아, 단지 하룻밤 정도는,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어, 그러면 나는 또 얼마의 엑스를 얻게 될 테고, 그걸로 갈 곳이 없어,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유혹할 수도 있어, 그런데 나는 그게 싫었어, 언니에게, J는 나를 언니라고 불렀다, 나이를 묻지도 않고 _ 거부하는 것이 싫었어, 여기서는 이런 것들을 주고받으면서 가까워지는데 언니는 그러지 말라고 하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 그래서 따라왔어.  

J의 눈이 그 때와 같이 지평선처럼 반짝이는 것을 본다, 다락방에서 J를 데리고 내려와, 마치 다시 같은 꿈을 꾸게 될까봐 무서워하는 아이를 달래듯, J에게, 어떤 꿈을 꾼 거야? 다시 이야기해 줘, 라고 말한다. J는 미키마우스가 그려져 있는 잠옷을 입은 채로, 화장대에서 일어서며, 물 좀 마실게, 라고 내게 말하고, 걸어가다, 돌아서 나를 보며, 말한다. 꿈속에서 나를 보았어, 지금의 내 모습을 보았어, 내 눈이 지평선처럼 반짝이고 있었어, 오늘밤도 그 때처럼 나를 묶어 줄 거야? 아니, 아이를 생각해, 내가 말한다. 그래, 맞아, 맨션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 J가 말한다. 언니, 아직도 그 말 믿어? 무슨 말? 자신을 위해주고 아껴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옆에 있게 되면 그 때부터 세상은 끝이 나는 거야, 라는 거 말이야. 나는 머리를 묶으며, 글쎄, 라고 말한다, 내가 꿈꾸는 세상을 끝내 버릴 수 있는 사람이 언니였으면 좋겠어, J가 말한다. 지금도 난 세상의 끝 같은 건 보고 싶지 않다. 그런 것이 있을까?

2009/09/14 - [글쓰기] - Dime Novel #6
2009/09/22 - [글쓰기] - Dime Novel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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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me Novel #6

from Reset 2009. 9. 14. 04:56
갈 곳이 없어,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J를 보았다, J도 멈추었고, 나는, J에게 손짓을 했다. 다가오던 J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 모습에, 나는, 버스 정류장에서 보았던 여성이 생각나, 그 여성처럼, J에게, 마치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이 되어 말했다,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야, 그 순간에는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J는,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아주 느린 동작으로, 호주머니에서 엑스를 한 알 꺼내어서 내게 주었다, 갈 곳 없는 사람들만이 이별 앞에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거야, J가 말했다. 현실적이지 않은 모습을 J가 알아챈 것처럼, 나는 엑스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그런 걸로는 환심을 사지 못해, 라고 말했다, J에게, J는 꺼내어 놓은 엑스를 자신의 혀 위에 올려놓으며, 그런 표정은 갈 곳이 없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거야, 어울리지 않아, 라고 말했다. 나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 앞에서만 그런 표정이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갈 곳이 없어, J는, 그런 표정이 어울리지 않아, 갈 곳 없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표정을 가지고 있지 않아, 라고 말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도망쳐 나왔던 이상한 섬을 떠올렸다, 적어도 학대만 견디어 내면 사랑받을 수 있는 곳 _ 하룻밤만 재워 줘, J는, 오늘 하루는 아무 일 없이 자고 싶어서 그래, 라고 말했다.

나는 _ 부도난 건설회사가 만들어 놓은, 7층 건물의 제일 위층에 숨어 살았다, 지금 생각해도 그곳은 밤이면 어둠만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그럴 때면 달빛이 유난히 밝게 보이고, 주변의 건물들이 마치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변했다. 이상한 섬에서 도망쳐 나와 한 달 동안 숨어 살았지만, 그 날은 J에게 무언가를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따라와, 나는, J와 함께 건물에 들어섰다, 아 맨션에 사는 구나, J는 그곳을 맨션이라고 불렀다. 나도 맨션에 살았던 적이 있어, 이래봬도 나는 꽤 유능한 댄서였어. J는 금세라도 춤을 출 것처럼 윗옷을 벗으려고 했다, 그러자 배꼽에 붙어 있는 피어싱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나는 J를 자리에 앉히고, J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동공이 커져 있어, 다시 J를 눕히고, J의 호주머니에 들어 있는 엑스를 모두 끄집어내어서 모래를 파고 건물 구석에 묻었다, 그리고 한쪽에 있는 빨랫줄과 같은 끈으로 J의 손과 내 손을 함께 묶었다, 오늘은 아무 일 없이 자도록 해, J는 이후에 여러 가지 말을 했다, 주워온 매트리스 위에 누워서, 내 손과 J의 손이 묶이고 이어진 채로, 세상의 끝에 대한 이야기 했다. 자신을 위해주고 아껴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옆에 있게 되면 그 때부터 세상은 끝이 나는 거야, 더 이상은 가고 싶어도 못 가. 그 뒤로 J는 맨션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J가 그냥 고양이처럼 그 곳에 있었으면 했고, 세상의 끝 같은 건 보고 싶지 않았다.

2009/09/12 - [글쓰기] - Dime Novel #5
2009/09/19 - [글쓰기] - Dime Novel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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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me Novel #5

from Reset 2009. 9. 12. 00:54
500원, 하마터면 그렇게 이야기할 뻔했다, 마치 대답을 미리 준비해 두고, 누군가 말을 걸어오면 그대로 말할 거라고 늘, 생각하고 있었던 것처럼, 나는 길을 걸어가고 있었고, J는 길모퉁이에 서서 걸어오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J는, 귀가 드러나는 짧은 머리에 각을 세우고, J의, 역할을 알려주는 머리 모양을 하고, 걸어오는 나를 보며, 기타 줄을 생각 없이 튕겨 내듯이, 말을 걸어왔다, 얼마야? 나는 J를 지나쳐 걸어가려고 했고, J는 그런 나의 손목을 잡으며 다시 물었다. 얼마냐니까? 그 말에, 나는, 또, 500원, 내 사랑의 값어치를 매긴 _ 금액을 말할 뻔했다, 아마 J가 정말 궁금했던 것은 다른 것이었을 테지만, 나는, J의 손을 다른 손으로 잡아 떼어내며, 너는 얼마야? 라고 물었다, 나는 값어치가 없어, 라고 J가 말했다, 하룻밤만 재워 줘.

J는 갈 곳이 없다, 고 했고, 오늘 하루면 돼, 라고 짧게, 붉고 푸른 등으로 얼굴의 반을 가린 채 내게 말했다. 며칠 전부터 봐 왔어, 늦은 시간에 항상 여기를 지나가잖아, 갈 곳이 없는 거지? J는 자신감에 차서 말했다. 그 말은 마치 같은 입장이기 때문에 네가 나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처럼 들렸고, 나는, 그 말을 무시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오늘은 버스 정류장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여성과 그 앞에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남성을 보았다, 여성은 모직으로 된 검은색 스커트 정장을 하고 있었고 남성은 아무렇게나 입은 트레이닝복에 슬리퍼 차림으로, 남성은 여성을 위로하지도 달래지도 않았다, 이별의 순간, 남성은 그 자리를 빨리 피했으면 좋겠다는 표정으로 여성의 울음에 답하지 않고 버스 정류장 앞에 서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따라서, 그 여성의 입 모양을 유심히 보며, 그 여성이 하는 흉내를 내었다, 관찰하면서, 조심스럽게, 몸짓과 얼굴 표정, 이야기하는 입모양을 따라서, 현실적이지 않은 모습, 을 흉내 내었다,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야 _ 갈 곳 없는 사람들만이 이별 앞에서 눈물을 흘릴 수 있어, 나는, 그 여성을 모사했다, 그 자리에서 _ J가 따라오고 있었다. 

2009/09/10 - [글쓰기] - Dime Novel #4
2009/09/14 - [글쓰기] - Dime Novel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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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reason

from 글쓰기 2009. 9. 10. 04:55
자신을 위해주고 아껴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옆에 있게 되면 그때부터 세상은 끝이 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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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me Novel #4

from Reset 2009. 9. 10. 02:16
우리는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거야, 라는 말이 떠올랐어. 언니가 내게 해 주었던 이야기 말이야, 그래서 찾아왔어. J는 하얀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스니커즈를 신고 큐빅이 박힌 머리띠를 한 채로 한 손에는 거봉이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문 앞에 서 있다. 예전처럼 천진하게 웃으며, 또는 시선을 떨어뜨렸다가 나를 보기도 하며, 늦은 시간까지 밤거리 귀퉁이에서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지낼 때의 눈빛을 하고, J는 나를, 나는 J의 길게 늘어뜨린 귀걸이를 바라본다, 귀걸이는, 흔들림 없이 J의 귓불을 아래로 조금 당기면서 J의 일부가 되어 있다. 다른 귀 언저리에는 피어싱을 뺀 자국들이 남아 있다, 귀걸이만이 J에게 허락되어 있는 것처럼, J는 자정이 되어서야 내게 찾아왔다.

J를 처음 본 것은 지방 소도시의 유흥가에서였다. 나는 이상한 섬에 끌려들어갔다 도망쳐 나왔다, 얼마되지 않은, 그때, 나는 그 도시에 숨어 있었다, 내가 한 일이 부끄러워서 라거나, 누군가가 나를 쫓아올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그것 외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자극을 모두 줄이고 싶었고, 나는 혼자였다, 그리고 나는 매일 밤, 사람들을 구경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그러던 중에 J를 만났다. J는 늘 내가 다니는 길모퉁이에 또래 아이들 두세 명과 어울려서 서로 키스를 하거나, 세상이 끝난 것처럼 껴안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곳은 세상과 격리되었거나 버림받은 곳처럼 보였다. 중년의 남성과 초년의 여성들이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고, 걷고, 트렌스젠더들이 자유롭게 공연할 수 있는 가게들이 즐비해 있고, 골목길 사이사이에는 암페타민과 밀가루를 교묘하게 섞어서 파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J는 붉고 푸른 등을 단 가게들이 끝나는 어느 모퉁이에서 언제나 제일 늦은 시간까지, 설령 혼자가 되더라도 그곳에 서 있었다. J는 지나가는 나를 향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얼마야? 

2009/09/09 - [글쓰기] - Dime Novel #3
2009/09/12 - [글쓰기] - Dime Novel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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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me Novel #3

from Reset 2009. 9. 9. 11:55
다락방에서 내려와 J의 몸을 닦는다, J의 등은 심하게 젖어 있고, 땀방울이 마치 J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얇게, J의 등과 엉덩이를 매만지고 있다. 잠을 자는데 땀이 많이 나는 것이 느껴졌어, 나는, 언니와 길게 뻗어 있는, 지평선이 바라보이는 길을 걷고 있었어, 나는, 이대로 언니와 언제까지나 있고 싶다, 는 마음이 들어서 _ 절대 언니에게 그 말은 하지 않을 거야, 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언니는 변함없이 내 손을 잡고 있었고, 그 때 언니의 양 볼이 차갑게 보여서 나를 안아주면 안 될까? 키스해 주면 안 될까? 라는 눈빛으로 언니를 보고 있었어, 언니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볼까? 라고 내게 말했고, 나는 길 대신 언니를 바라보며, 무서웠어, 그러겠다고 언니에게 말하고 있었어, 그러다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내 눈과 마주쳤어, 내 눈을 보았어, 나는 꿈을 꾸었어.

J의 몸이 마르고, J를 화장대 앞에 앉히고, 따뜻한 물이라도 마셔, 라고 이야기 하고, 나는 흐트러져 있는, J의, 머리카락을 묶어 주고, J가 갈아입을 옷을 찾아 건네어 준다, J는 일어나서 거울을 바라보고 자신의 배를 만지면서 말한다. 나는 꿈을 꾸고 다락방으로 가 버린 거야.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나는 아직 채 옷을 입고 있지 않은 J의 등에 귀를 가져다 댄다. 몸이 말랐어, J가 말한다. 나는 손가락으로 J의 배를 지긋이 누르면서 그렇게 마르지 않았어, 라고 말한다. 땀이 말랐어, 그런가, J가 말하고, 내가 말한다.

J를 만난 것은 오래 전이다. J는 일주일 전에 나를 찾아 왔다. 내 사랑을 찾을 수 있게 도와 줘, J는 자신의 발아래로 시선을 떨어뜨리고 나를 보고, 다시 시선을 떨어뜨리고 나를 보고, 내 손을 자신의 가슴에 올려놓으며, 언니는 나를 읽을 수 있어? 라고 말한다.

2009/09/07 - [글쓰기] - Dime Novel #2
2009/09/10 - [글쓰기] - Dime Novel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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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me Novel #2

from Reset 2009. 9. 7. 11:05
잠에서 깨었을 때 J가 옆에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잠결에 J는 내 손을 꼭 마주잡거나, 내 볼에 입을 맞추거나, 내 다리를 만지거나 _ 한다, 어렴풋이, 따뜻한 혀가 내 차가운 볼을 쓰다듬던 것이 떠오른다, J의 혀가 떨어지면 볼이 다시 차가워져, 나는, 손으로 볼을 만진다, J는, 돌아가지 않을 거야, 좋아, 이대로 언니와, 고마워, 라는 따위의 말을 한다, 꿈결에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꼭 마음이 공중에 뜬 것 같은 기분이 된다, 후회하지 않을 거지? J가 하던 말이 내 눈을 뜨게 한다.

꼭, 천장에 선풍기가 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밤, 은 무덥다, 어디서 북소리라도 들리는 것처럼, 가슴이 뛰고 _ J가 누워 있던 자리의 시트가 흥건히 젖어 있는 것을 본다.

등에 나 있는 땀방울이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어. J는 다락방에 숨어 있다. 여기서 뭐하는 거야? 기분이 좋지 않아, 무슨 일이야? J에게 묻는다, 이런 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거야? J가 말한다, 책을 읽고 있어, 어떤 책을 읽고 있는 거야? 라고 묻는다, 그러니까, 나에 대한 책을 읽고 있어, 라고 말한다. 손에 책이 없다, 책은 어디에 있어? 내가 묻는다, 여기, 라고 하며 J가 가슴에 손을 얹는다, 나쁜 꿈을 꾸었어, 꿈속에서 나를 보았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내 지금의 모습을 보았어, 라고 말한다, 내 진짜 모습을 보았어, 라고 하면서 몸을 오들오들 떤다, J는, 그런데 그 옆에 언니가 있었어, 언니, 나를 어떻게 할 건 아니지? J가 묻는다. 후회하지 않을 거지? 내가 묻는다, J는, 언니가 그렇게 하라면, 그렇게 할게, 라고 말한다, 나는, 착하지? 라는 말 대신, 그래도 손은 놓지 않을게, 라고 말한다. 그런 일은 없을 테지? J가 묻는다, 나도 잘 몰라, J의 손을 잡는다, 걸을까? J에게 말한다, J가 일어나 걷는다, J의 눈이 지평선처럼 반짝인다.

2009/09/06 - [글쓰기] - Dime Novel
2009/09/09 - [글쓰기] - Dime Novel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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