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 Novel #22

from Reset 2012. 2. 28. 02:20
현재 _ 한 달 전, J의 전시회가 있었다. 합정역 근방, J는 맨션에서 살아남았고, 나는 맨션에서 도망쳤다. J의 배가 홀쭉해졌다. 천정이 높은 전시회 입구로 들어서자, 하얀 벽 앞에 수채화처럼 서 있는 J가 보이고, 벽에는 J의 지느러미가 만들어 낸 그림들이 걸려 있다. 내가 떠나고, J의 지느러미가 만들어졌다, 나로 _ 부터,

슬픔에 닿아있을 때보다 불의에 닿아있을 때, 더 살아있기 편해. 
J가 말한다, 저만치에서 뛰어와, 나에게는, 붉고 푸른 등을 단 가게들이 끝나는 어느 모퉁이에 서 있던 J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 J가,

내 뒤를 따라올 때, 나는 세상에서 단 한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릴 거야. 그건 맨션에서 일어났던 일은 아니었어. 절대 그렇게 될 수 없어, 언니, 나는 불의에 항의하기 위해서, 이 일을 계속할 거야. 언니와 나 사이에 있었던 그 불의에 항의하기 위해서, 언니가 언니의 불의에 항의하기 위해서 나를 받아주었듯이 말이야.
첫 전시회에서 _  

J가, 내게, J는 맨션에서 있었던 일들을 그림으로 그려 화가가 되었다, 나와 있었던, 일들 _ 잊히지 않는다는,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때의 일이 떠오른다, 
내가 서 있던 맨션의 모습도, 그런 나를 올려다보고 있던 J의 모습도, 그리고 내가 왜 맨션을 기억하고 있는지도, 그토록 도망치고 싶었던 _

나는 네가 상처입었으면 좋겠어, 케이, 네가, 망가져 버렸으면 좋겠어, J가 말한다, 케이가 무너져 버린 맨션, J와 내가 만나 헤어졌던 곳, 케이도 J와의 관계에서 만들어진 불의에 항의하고 있을까? _ 어딘가에서. 

케이?  


세상에는 단 한 사람만이 필요해, 결코, 가질 수 없는 단 한 사람. 그런 것에 상처는 기생하며 살고 있겠지. 거기에는 나도 다를 바가 없어. 
J가 말한다.  

그렇지 않아? 그걸 우리는 사랑이라고 불렀어. 사랑해, 라고 말할 때 그건 언니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나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했지. 예를 들면 더는 록 페스티벌에 갈 수 없는 나이가 되었을 때 느끼는 감정 같은 것 _ 지금은 느낄 수 없는 것.

J가 냉장고 문을 연다, 냉장고에서도 열이 난다. 손을 대면 뜨겁다. J가 뜨겁다.

언니도 봤어야 했어, 내가 TV에 나오는 것을, 내가 쓴 책들이 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것을, 그리고 내가 어떻게 살고 있나 하는 것을 언니도 봤어야 했어. 그렇지 않다면 의미가 없어. 언니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야, 언니없이 내가 얼마나 망가졌나 하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도 아니야. 어차피 언니는 내가 끝까지 갔을 때의 모습을 모두 보았을 테니까. 단지 언니가 나를 보아주었으면 했어. 그안에서 살고 싶었어. 있는 그대로의 나를 관찰해 주던, 언니가 보는, 나 자신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가 너무도 궁금했어. 

J가 내게 말한다. 내가 당신에게 그토록 하고 싶었던 말을 J가 내게,

나를 사랑하니?
아니.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열렬히 사랑한다고 해서, 그 사랑이 나에게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아. 사랑받지 못하면 사랑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아, 아니, 사랑하지 못하면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쯤은 알아, 아니, 내게 필요했던 것이 사랑이 아니었다는 것쯤은 알아, 언니에게 있어서, 나는 _ 

그냥 마냥 그리운 사람, 그런 사람을 모두 한명쯤은 마음속에 품고 사는 거지. 늘 생각하지는 않지만, 생존에 필요하지 않은, 함께 할 수 없는, 이 애잔한 감정의 이입을 우린 사랑이라고 불렀지, 그래서, 그 이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어. 정말 아무 것도 없었어. 그때 알게 되었지 _ 

누군가 자신을 아껴주고 위해주는 사람이 있게 되면 세상은 끝이 나는 거야. 

도망치고 싶었던 곳 _  

맨션으로부터의 독립, 맨션의 독립. 

세상에는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 _ 그것도 변하지 않았어. 
J가 말한다, 그때처럼 내게, 치즈 케잌을 건네어 준다.
이렇게 말할 때, 이건 언니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나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 _ 

J를 보고 있으면 당신 생각이 난다.
네가 보지 않아도 나는 다른 사람과 자고 있을 거야.
당신은 내게 말했다.  

내 글에 대한 너의 표절이 너를 행복하게 한다면 그렇게 하도록 해.
내 삶에 대한 너의 표절이 너를 행복하게 한다면 그렇게 하도록 해.
이제, 네가 정말 행복해 질 수 있을까?
당신이 내게 말했다.

단지 이 일이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간단한 일이라면 좋겠어.
이 일이 그냥 세상에서 가장 적절한 분노라면 좋겠어 _ 

이 일을 멈추면, 언니와 있었던 그 많은 일들이,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될까, 그게 두려워.

J가 말한다, 허탈한 밤.

J는 옛날의 J와 같이, 아름다운 몸을 헐벗고 나의 옆에 눕는다.  

그리고, J의 전시회가 끝난다, 다행스럽게도 _  

끝나지 않을 물음, J는 맨션이 빚어낸 아이일까? 케이는 J가 버린 아이일까?
그리고 나는 J를 떠나기만 한 것일까?
다행스럽게도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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