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 Novel #6

from Reset 2009. 9. 14. 04:56
갈 곳이 없어,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J를 보았다, J도 멈추었고, 나는, J에게 손짓을 했다. 다가오던 J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 모습에, 나는, 버스 정류장에서 보았던 여성이 생각나, 그 여성처럼, J에게, 마치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이 되어 말했다,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야, 그 순간에는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J는,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아주 느린 동작으로, 호주머니에서 엑스를 한 알 꺼내어서 내게 주었다, 갈 곳 없는 사람들만이 이별 앞에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거야, J가 말했다. 현실적이지 않은 모습을 J가 알아챈 것처럼, 나는 엑스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그런 걸로는 환심을 사지 못해, 라고 말했다, J에게, J는 꺼내어 놓은 엑스를 자신의 혀 위에 올려놓으며, 그런 표정은 갈 곳이 없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거야, 어울리지 않아, 라고 말했다. 나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 앞에서만 그런 표정이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갈 곳이 없어, J는, 그런 표정이 어울리지 않아, 갈 곳 없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표정을 가지고 있지 않아, 라고 말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도망쳐 나왔던 이상한 섬을 떠올렸다, 적어도 학대만 견디어 내면 사랑받을 수 있는 곳 _ 하룻밤만 재워 줘, J는, 오늘 하루는 아무 일 없이 자고 싶어서 그래, 라고 말했다.

나는 _ 부도난 건설회사가 만들어 놓은, 7층 건물의 제일 위층에 숨어 살았다, 지금 생각해도 그곳은 밤이면 어둠만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그럴 때면 달빛이 유난히 밝게 보이고, 주변의 건물들이 마치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변했다. 이상한 섬에서 도망쳐 나와 한 달 동안 숨어 살았지만, 그 날은 J에게 무언가를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따라와, 나는, J와 함께 건물에 들어섰다, 아 맨션에 사는 구나, J는 그곳을 맨션이라고 불렀다. 나도 맨션에 살았던 적이 있어, 이래봬도 나는 꽤 유능한 댄서였어. J는 금세라도 춤을 출 것처럼 윗옷을 벗으려고 했다, 그러자 배꼽에 붙어 있는 피어싱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나는 J를 자리에 앉히고, J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동공이 커져 있어, 다시 J를 눕히고, J의 호주머니에 들어 있는 엑스를 모두 끄집어내어서 모래를 파고 건물 구석에 묻었다, 그리고 한쪽에 있는 빨랫줄과 같은 끈으로 J의 손과 내 손을 함께 묶었다, 오늘은 아무 일 없이 자도록 해, J는 이후에 여러 가지 말을 했다, 주워온 매트리스 위에 누워서, 내 손과 J의 손이 묶이고 이어진 채로, 세상의 끝에 대한 이야기 했다. 자신을 위해주고 아껴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옆에 있게 되면 그 때부터 세상은 끝이 나는 거야, 더 이상은 가고 싶어도 못 가. 그 뒤로 J는 맨션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J가 그냥 고양이처럼 그 곳에 있었으면 했고, 세상의 끝 같은 건 보고 싶지 않았다.

2009/09/12 - [글쓰기] - Dime Novel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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