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 Novel #10

from Reset 2009. 10. 27. 00:24
맨션의 매트리스 위, 나는, 배낭을 연다, 젖은 신문과 찢어진 소설책과 노점에서 훔친 귤과 선글라스와 리본이 달린 인형과 립스틱과 아이섀도우가 들어 있다, 나는, 매트리스 위에 쪼그려 앉아 찢어진 소설책의 여백에 메모를 한다, 맨션에 들어온 지 한 달째, 언제쯤 나는 도망칠 수 있을 만큼 안전해질까? J가 돌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무슨 생각이지? 헤드라이트를 켠 검은 색 승용차가 맨션 앞에 도달하더니 J와 어느 남성이 모습을 보이고, 파티장에 있는 것처럼 떠들면서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여기가 어디야? 맨션, J는 마치 내가 이야기를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를 낸다. 여기서 뭐하게? 밖도 나쁘지 않아, J가 말한다. 남성은 짙은 바지에 흰색 운동화를 신었고 무지갯빛 점퍼를 입고 야구 모자를 쓰고 있다, 남성은, 양 귓불에 10원짜리 동전 1/4 정도 크기의 큐빅이 박힌 귀걸이를 하고 있다. J는 메이즈메이의 것과 비슷한 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하얀색 스니커즈를 신고 진한 검정 색 가발을 쓰고 있다, 원피스의 어깨가 가발로 덮여 있다. 저기에 누가 있어, 신경 쓰지 마, 누가 있다니까, 누가 보면 어때? 우리 사이에 상관없잖아. 둘은 내가 앉아 있는 앞을 지나, 부둥켜안고, 달빛이 잘 비치는 곳으로 향한다, 나는 메모하던 소설책을 배낭에 집어넣는다, LES MISERABLES, 둘은 입맞춤을 하고, J는 그러면서 나를 본다,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른다, 나는 배낭을 닫고, 무엇을 하냐는 듯이 J의 입술 모양을 따라 한다, 눈을 크게 뜨고, 남성이 J의 원피스를 벗긴다, 지퍼를 열고 남성이 J의 어깨를 쓰다듬자 하늘색 원피스는 힘없이 J의 나체를 드러내고 떨어져 내린다, 아름답다, J의 몸은 아름답다, J는, 속옷을 무엇도 입고 있지 않다, 남성이 J를 품에 안고 있는 내내 J는 나를 쳐다본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라는 듯한 얼굴로 내 모습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바라본다, 맨션 안의 공기가 점성을 가지고 흘러내린다. 몸이 아프다, 어깨에서 목덜미를 지나 뒷머리까지 닿는다, 통증은, 남성은 점퍼에서 엑스 두 알을 꺼내어 자신이 하나를 먹고 하나는 J의 입 안으로 넣어준다, J는 혀를 내밀어 그것을 올려놓고 장난치듯이 한 바퀴 돌리고 나서 목안으로 삼킨다. J는 남성의 바지를 내리고 남성 앞에 주저앉으려고 한다, 그러면서도 J는 나를 응시하고 있다, 마치, 이건 모두 언니 때문이야, 라고 하는 듯한 눈으로 남성의 벨트를 푼다, 나는, 배낭을 메고, J를 한번 보고, 나는 이제 여기 오지 않을 거야, 라고 들리지 않을 듯한 음성으로 J에게 말하려다 말고, 뒤돌아서서 맨션의 계단을 내려간다, 계단을 다 내려올 때쯤 위층에서 J의 소리가 들린다, 잠깐 있어봐, 언니가 가려고 하잖아, 나는, 계단을 모두 내려와 맨션과 이어져 있는 길로 들어선다, 논과 같은 공터가 있고, 아카시아와 코스모스가 솜털처럼 공중에 매달려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때, 뒤에서 J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언니, 어디 가는 거야? 뒤돌아서려다 그만두고 다시 걸으려고 할 때, 정말 나를 저런 녀석과 함께 버려두고 갈 거야? 라고 소리친다, J는, 나체로 내 뒤를 쫓아온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춘다, 나는, J가 하는 말을 어느 것도 이해할 수 없다, J는 숨을 헐떡이며 나체로 내 앞에 선다, J의 나체는 아름답다, 무슨 말이야?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니야, 그냥 어젯밤에 네가 나를 쫓아온 거야, 난, 너와 엮이기 싫어, J는 자신의 오른 손목을 내민다, 이래도? 지난밤에 생긴 상처를 보인다, 그건 네가 엑스를 먹고 하이(high) 상태에서 무슨 짓을 할지 몰랐기 때문에 그런 거야, 됐어, 그냥 쟤랑 놀아, 나는 돌아선다, 언니 가지마, J가 소리친다, 있는 힘껏, 듣기 싫은 목소리를 내며, 그 순간 남성의 소리가 들린다, 뭐 하는 거야? 사람을 가지고 노는 거야, 뭐야, 이리 와, 남성은 J를 끌고 다시 맨션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나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J가 자초한 일이야, 뭐하러, 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는 동안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이거 놔, 언니가 가잖아, 이거 놓으라고, J가 소리친다, 웃기고 있네, 남성이 말한다, 아 -, 앙칼진 J의 비명이 들린다, 반사적으로 돌아보았을 때, 남성은 J의 가발을 벗기고 J의 머리채를 잡고 J의 뺨을 때리고 있다, 배를 발로 걷어차며, J의 나체는 남성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고, 남성은 J를 어깨에 둘러멘다, 낯익은 모습이다, 이상한 섬에서 사내가 나에게 하던 행동과 같다, J는 힘없이 축 늘어져 남성의 어깨에 매달려 있다, 곧 있으면 맞은 상처와 맞물려서, J는, 하이로 갈 것이다.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든다, 이상한 섬에서 사내가 나에게 하던 행동을 저 남성이 J에게 하고 있다, 그러니까 송곳니라도 드러내고 싶은 심정이 된다, 나는, 나도 모르게 배낭과 윗옷을 벗는다, 되도록이면 침착하게, J를 어깨에 메고 있는 남성에게 걸어가며 벗은 내 몸을 훑어본다, 푸른 반점이 일그러진 채로 퍼져 있다, 잠깐 거기에 서 봐, 남성에게 말한다, 남성은 이건 또 뭐야, 라는 모습으로 돌아서 나를 본다, 남성은 나보다 10cm는 더 커 보인다. J가 매달려 있다, J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려고 한다, 남성은 웃통을 벗고 있는 나를 본다, 나는, 남성이 보는 앞에서 브래지어를 끄른다, 몸의 푸른 반점들이 더 선명해진다, 사실 내가 몹쓸 병에 걸려 있어서 말이야, 이게 전염도 가능해, 지금부터 나는 최선을 다해서 네 몸을 물 거야, 그러면 이런 반점들이 너도 머지않아 생기게 될 거야, 그러니까 내려놓고 그냥 가, 남성은 이런 미친, 이라는 얼굴빛으로 무슨 얘기인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멈추었다가 J를 내려놓고 J에게 침을 뱉고, 재수가 없으려니까, 라고 말하며 자신의 검은 색 승용차로 돌아가 시동을 건다, J는 일어나 돌멩이를 집어서 남성의 승용차로 던진다, 남성이 떠나고 J와 나만 남겨진다, J의 나체를 일으켜 세우자, J가 말한다, 언니 옷 입어, J는 내 몸에 나 있는 푸른 반점을 들여다본다, 언니가 나를 구해줄 줄 알았어, 나는 아무 값어치가 없어, 내 값어치를 매겨줄 사람이 없어, 나는, 내 벗은 옷을 들어 J를 가린다, 그래서 언니가 나를 관찰해 주었으면 했어, 엑스를 아무리 먹어도 매일 다른 남자들과 잠을 자도 나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어, 이제 이런 일을 끝내고 싶어, 그래, 알았어, 그만 들어가, J를 데리고 맨션으로 향한다, 배낭을 다시 메고, 브래지어를 손에 들고, 옷으로 J를 가리고, 그런데 나는 언니에게 줄 게 없었어, 내가 언니에게 줄 수 있는 건 이런 것들뿐이야, 이것 봐, 언니에게 일어났던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거야,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언니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거야, 언니가 물었잖아, 나를 관찰해 주면 언니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내가 언니에게 줄 수 있는 건 이런 것들밖에 없어, 나는 갑자기 가던 걸음을 멈춘다, 이상한 섬에서 사내가 나에게 했던 행동이 마치 낡은 타자기로 활자를 찍어내는 것처럼 떠오른다, 푸른 반점, J의 얼굴을 본다, 동공이 열려 하이로 넘어가고 있다, J는, 무거워진다, 그래, 네가 원하는 대로 해, 그렇지만 한가지는 명심해 둬, 연애는 안 돼, 너하고 연애는 하지 않을 거야, 사랑으로 치닫는다는 건 다시는 예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니까 말이야, 변한 모습을 책임지는 것은 각자의 몫이야, J는 꿈을 꾸는 듯 내 손을 움켜쥔다, 이 손 놓지 마, J가 말한다, 나는, J에게 들리지 않게, 넌 곧 후회하게 될 거야, 라고 말한다.

2009/07/28 - [어떤 날] - Sp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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