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 Novel #26 - Beyond doubt

from Reset 2014. 9. 16. 02:42
낙서가 끝나면, 침묵이 시작된다.

2010/01/11 - [어떤 날] - The empty space

*

언니가 나를 관찰해 주었으면 했어.

맨션의 매트리스 위, 나는, 배낭을 연다, 젖은 신문과 찢어진 소설책과 노점에서 훔친 귤과 선글라스와 리본이 달린 인형과 립스틱과 아이섀도우가 들어 있다, 나는, 매트리스 위에 쪼그려 앉아 찢어진 소설책의 여백에 메모를 한다, 맨션에 들어온 지 한 달째, 언제쯤 나는 도망칠 수 있을 만큼 안전해질 수 있을까? 케이가 그런 나의 모습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그냥 낙서하는 거야. 케이를 돌아본다. 케이는 밝은 얼굴을 하고 있다. 천진한 표정으로. 케이는 J가 내 곁에 없을 때 한없이 상냥해진다.

"어떤 낙서?"
"J가 자신을 관찰해 달라고 하니까 뭐라도 써 놓는 거야."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
케이가 말한다.
알고 있어. 언니가 이곳을 언제든지 떠나고 싶어한다는 것을 말이야. 관찰하는 사람은 언어를 쓰지 않아.

맨션의 매트리스는 푸른 꽃과 같은 얼룩이 져 있다. 그곳에 J와 누워 있으면, 꼭 FOUR SEASONS HOTEL의 SEALY 매트리스에 누워 있는 기분이 된다. 퀸사이즈의 매트리스 위에서, 나는, J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맨션에서 다음에 어떤 파티를 하면 좋을까, 와 같은 것이었는데, J는 레이브 파티를 기획하는데 탁월할 재능이 있었다. PULP 그래비티를 그리는 것이며, 어떤 음악을 선정할지, 무대는 어떻게 꾸밀지, 조명은 어떻게 할지, 럼과 진 / 보드카를 얼마나 가지고 올지, 그리고 파티에 사용할 엑스를 구하는 것도 모두 J의 몫이었다. 그런 매트리스 위로 달빛과 맨션 안의 오렌지빛 조명이 함께 떨어져 내린다. 그 모습을 보자 BENETINT를 묻힌 J가 생각난다.

"언어?"
케이는 생소한 단어를 쓴다.
"언어."
케이가 말한다.
나는 J가 언니와 행복해지는 것이 싫어. 언니가 오기 전까지, 우리는 아무 문제 없이 지냈어. 서로 의지하며, 힘든 일이 있을 때 서로 도와주면서 말이야. 그러는 동안에 서로의 언어를 배웠어. J와 나는 공통의 언어를 가지고 있어. 어디에나 언어는 있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와 같은 언어도 있을 테지만, 여기 맨션에서는 맨션에서만 통용되는 언어가 있고, 다운타운에는 다운타운에서만 통용되는 언어가 있어. 언니에게도 언니를 이루고 있는 언어가 있을 테지만, J와 나는, 언니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공통의 언어를 가지고 있어. 그게 기억을 재생시켜 주니까. 그러니까 우리 사이에는 언니가 필요 없어.
자신을 위해주고 아껴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옆에 있게 되면 그때부터 세상은 끝이 나는 거야. 알고 있지?

케이의 말을 듣자, 마치 오랫동안 팔을 괴고 있어, 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상한 섬에서의 사내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기억이 담요로 머리를 씌우는 것처럼 나를 덮쳐 왔다. 이상한 섬에서의 사내는 내게 몹쓸 일을 많이도 시켰다. 그리고 나는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사내가 하는 일을 관찰했다. 사내의 습관, 말투, 인상, 좋아하는 일, (들), 싫어하는 일, (들), 사내 자신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변덕스러운 감정의 변화, 같은 것 (들). 그러는 사이에 사내에게는 사내만의 독특한 행동 패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관찰하는 것이라면 자신 있어.
내가 말한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

케이는,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다, 고 하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순간 궁금해졌다. J가 말한 '관찰'이라는 것과 내가 알고 있는 '관찰'은 다르다.

나는 낙서를 끝낸 소설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낙서가 끝나면, 침묵이 시작된다. 공통의 언어가 없는 관찰. 케이의 독백. J의 해체]

J가 돌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2009/06/24 - [글쓰기] - Paint Me Bl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