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해당되는 글 128건
- Lucid Interval 2 2009.06.09
- Side Street 2 2009.06.09
- Coming Home 4 2009.06.08
- Attachment 2 2009.06.07
- Stay Away 6 2009.06.07
- Object in Waiting 4 2009.06.06
- Metropolis 2 2009.06.06
- Scribbling 2 2009.06.05
- False Belief 8 2009.06.04
- Do not leave me 2009.06.01
- Les Miserables 4 2009.05.31
- Rorschach Test 2009.05.28
- A Lecture Room 2 2009.05.26
- Responsibility 2 2009.05.19
- Reset, Resettable, Resetting 2009.05.19
- Transmigration 2009.05.17
- Selfobject 2 2009.05.17
- Affair 2009.05.15
- Working through 2009.05.15
- Underworld 2009.05.15
- You, too. 2009.05.14
- You 2009.05.14
- 밀양댐 2009.05.13
- Summer Night 2009.05.13
- Individuation 2009.05.13
- 기대 2009.05.03
- 기억2 2009.05.01
- 환타지 2009.05.01
- 그런 말 2009.05.01
- 연민 2009.04.24
어느 날 나는 이제 더 이상 당신을 만나지 않는다면 사랑은 없고 그리움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남은 늘 그렇듯 내 마음속에서 제멋대로 온오프가 될 뿐이다. 저기 서 있으면 당신이 귀가하는 것이 보인다. 당신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나는 당신이 나를 발견하길 바라며, 다음 골목에 숨는다. 그러면 철제 대문이 열리고 그 안으로 당신이 사라진다. 나는 골목과 철제 대문과 당신의 방에 불이 켜지는 것을 바라보고 무겁게 발걸음을 돌린다. 당신 때문에, 나 이만큼 힘들어, 라고 말하려고 전화를 걸었다가 그만 끊는다. 당신이 발신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어오면 나는 손 안에 느껴지는 핸드폰의 진동과 반짝이는 LCD 창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화를 받지 못한다. 친구는 이런 바보짓을 그만 두라고 말하고,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고 말한다. 나는 술을 마시고 저 골목길에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끝없이 떨리는 것을 느낀다. 어떻게든 당신이 내가 이만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좋겠어, 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불이 꺼지는 것을 본다. 저기 멀리서 친구가 달려와 등을 깨어 버린다. 어둠 속에서 친구와 나는 입을 맞추고, 친구는, 이제 그만해, 너 힘들어 하는 거 더 이상 못 보겠어, 라고 말하고, 내 손을 잡아끈다. 그러다가 당신이 저 골목길로 들어와, 내게 말한다, 여기서 뭐해? 들어와, 나는 친구의 손을 놓고 당신을 따라 어둠 속의 골목을 벗어나 당신의 집으로 들어간다. 나는 당신에게 버림받고 또 다른 남자친구에게 구원을 받는다.
빛이 부족한 날, 저 꽃들이 빛이 되어 주길 바랐어, 당신은, 내가 말했잖아, 보라색 원피스는 입지 말라고 말이야, 라고, 내게, 말하고, 그건 왜 그래요? 라고 내가 물으면, 사람들이 모두 너만 쳐다보잖아, 라고 말했어, 아, 나를 많이 사랑하나 봐요? 라고 내가 말하면, 너 같으면 좋겠어? 라고 했어. 당신은 좀처럼 나를 믿지 않았고, 내가 어디를 가나 확인을 하고 (나를 많이 생각해서, 나를 챙겨주는 거라고 생각했어), 보이지 않는 당신의 경쟁자들을 이기기 위해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빚을 내어 가면서 값비싼 옷이며 자동차를 사고 그랬어 (나를 위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어), 다른 남자와 있는 나를 견디지 못하고, 반복처럼, 저 녀석 너 좋아하는 거 아니야? 행동 조심하고 다녀, 라고 당신이 말하고, 잠자리가 끝나면, 버릇처럼, 나 어땠어? 라고 묻고, 나는, 최고였어요, 라는 거짓말을 했어, 그러면 너 거짓말 하는 거지? 라고 당신이 말하고, 너 지금까지 만난 녀석들은 어떤 녀석들이야, 하는 것을 밤이 새도록 내게 묻고, 너 지금 다른 남자 만나고 있는 거 아니야? 라고 말했어, 나는 점점 숨이 막혀왔지만, 아, 나를 많이 사랑하나봐, 그래서 그런가 봐, 라고 생각하면서 당신을 견뎌내었어. 그러다 어느 날은 바보처럼 내 품에서 하염없이 울면서, 미안해, 내가 못나서, 너에게 잘해준 것도 없고 정말 미안해, 라고 당신이 그래서, 이건 정말 가슴 아픈 사랑이야,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당신을 견뎌내었어, 당신이 나의 외출을 금지시키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하고, 너는 내꺼야, 라고 하며 내 몸에 당신의 표식을 남기고, 나를 집에 가둔 채 문을 잠그고, 휴대폰을 정지시키고, 내 홈페이지를 폐쇄시키고, 급기야, 당신이 나에게 싫증이 났다며 다른 여자를 만나는 동안에도 (나는 어린 새처럼 집과 모텔과 호텔에 감금되어 있었어), 사랑은 이렇게 힘든 걸까, 라고 생각하며 견뎌내었어 _ 이제 당신은 속이 시원한지 모르겠어, 당신 탓에 헤어진 이후로 정상적인 관계의 사랑을 하지 못해, 지금의 나는, 그렇게 당신은 나를 소유해 버렸나 봐 _ 오늘 길을 걷다가 저 꽃을 보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마치 저 하늘처럼, 안개낀 하늘처럼, 구름에 가려 있는 태양처럼, 뜨거워서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이 사랑의 끝은 내가 맺도록 허락해 줘.
J 의 일기장이 내게 우편으로 전달된다. 이런 따위의 내용들뿐이다.
- 딱 한번 그 골목에 가 본 적이 있어, 당신과 내가 앉아 있던 그 자리에 가 본 적이 있어, 내가 그 때 보았던 장식을 한 나무가 그대로 놓여 있어서 놀랐어, 크리스마스 이브였는데, 몹시도 당신이 그리웠어, 날 구해줘서 고마워. 저 나무는 빛을 잃어가지만 변함없이 저 자리에 있었던 거야, 그렇지? 기억해 줘서 고마워. 그리고 날 떠나줘서 고마워.
"나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당신에게 묻는다. 그럼 당신은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어떻게 생각하니?"
라고 되묻는다.
"몰라."
라고 대답하면
"생각해 봐."
라고 한다.
구원받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된다는 거야, 지금의 네가 아닌 다른 사람 말이야. 구원받았다는 것은 '너'를 누군가가 인정해 준다는 것을 말하는 거야, 너와 생각이 같지 않은 누군가가. 그러려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해, 그 사람을 감동시키든지, 네가 그 사람처럼 되든지, 무엇이든지. 그러기 위해서는 '너 자신'을 네가 먼저 인정하지 않으면 안 돼, 무슨 말이야?, 라고 내가 말한다. 그 말에 당신은 웃는다.
"나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당신이 묻는다. 그럼 나는 당신의 손을 잡으며
"어떨 거 같아?"
라고 되묻는다.
"글쎄."
라는 대답에 나는,
"결코 구원받지 못할 거야."
라고 대답한다.
"무슨 말이야?"
"나는 절대로 당신을 인정하지 않을 거니까 말이야."
나는 웃으면서 당신에게 말한다.
"그래, 알았어, 언젠가 네가 나를 구원해 줘."
라고 당신이 말한다.
그 말이 메아리처럼 '레미제라블'을 볼 때마다 들려온다.
- 결국 당신도, 나도, 서로를 구원해 주지는 못했나 봐.
J에 관한 일화, J에게는 남자 친구가 있다, 분명한 말을 하지 않는 사람, 과 만난다. '나 아닌 사람은 만나지 않을거지?', '좋아해.' 라는 대화를 즐기는 사람, 둘, 가끔 작업실에 놀러 오면, J는 직업이 없는 남자 친구, 에게 용돈을 준다, 어떤 날, 은, 나, 의 작업실에서 두 사람이 언쟁을 하며, '내 사랑을 의심해?' 라고 남자 친구가 화를 내고, '사랑해.' 라고 하면, J는 그런 게 아니라 네가 믿지 못하게 행동하니까, 라는 말을 한다. J의 남자 친구는 종종 연락이 되지 않고, 그러다 연락이 되면 화를 내고, 다음 날 J를 만나서는, 미안해, 언제나 너에게 미안해, 라고 말한다. J는, 남자 친구 때문에 힘들다며 간혹 나에게 찾아오고, 너무 사랑하니까 힘들어, 라고 말한다. 지난밤에는 울면서 찾아와, 다른 여자가 생겼어, 두 사람이 모텔에서 나오는 것을 친구가 보았대, 라고 하며, 어떻게 하지? 라고 나에게 묻는다. 다음 날 와서 미안하다고, 용서해 달라고 했어, 나 밖에는 없다고 하면서, 좋아해, 앞으로 잘할게, 라는 말을 했어, 어떻게 하지? 라고 나에게 묻는다. 순간 나는 '헤어져' 라는 말을 하려다 그만 둔다, J는 내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J는, 친구들이 헤어지라고 하는데,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 이제는 믿을 수 없게 되었지만, 앞으로 잘하겠다고 하니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 어떻게 하지? 라고 나에게 묻는다. 그 말이 나에게는, 그렇게 이야기 하니까 앞으로는 잘할 거야, 나에게 잘될 거라고 이야기 해 줘, 라는 말로 들린다. 나는 피곤하다고 하며, J를 돌려보내고, 앞으로 J에게 일어날 일들에 대해 생각한다. J는 버림받기 전까지 남자 친구를 떠나지 못할 것이다. (J는 항상 버림 받을 것이다.) 저런 아슬아슬한 상황에서만 행복감을 느낀 다기 보다 _ 저런 사람이라도 붙잡고 안전함을 느끼려고 하는 것 같다, J는, 학대받은 아동은 학대한 사람에게만 애착을 느낀다, 현재에도 미래에도, J는, 그런 류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J는 학대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과거의 학대받았던 기억을 reset 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이번 만은 괜찮을 거야.') 그건 꿈이다. J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은, 내가 아니면 누가 저 사람을 위해 주겠어?, 나 떠나면 저 사람 망가져, 안 돼, 였고 그건 J가, J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J는 남자 친구를 용서했다고 한다, 이번 한번 뿐이야.
- 이런 이야기를 당신 품에 안겨서 한다. 화가 난다, 고 한다. J를 보면 짜증스럽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자 당신은 내 이마에 손을 갖다 대고, 필요 이상이라면, 네 답답한 기억에 대한 회상이야, 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된다. ('그건 너와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이야.') 당신은 나를 껴안고 말한다.
- 당신은 내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한다. "그래, 그 아이를 구해줄 거야?" 라고 말한다.
- J가 말한다. "임신 중이여서 커피는 안 돼." 라고 말한다.
이렇게, 그는 이별 앞에서 태연하게 말했다. 나는 이 말을 듣지 않았고, 그가 나와 헤어진 이유는, 내가 이별 앞에서 그가 한, 이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그를 미행한다, 그의 뒤를 따라서, 그는 오전에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식사를 하고 동료들과 어울려 이야기를 나눈다. 어떤 날은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취해서 집으로 귀가하고, 몇 명의 여성들과 만나 영화를 보고 외출을 한다. 그는 때로는 웃고, 울고 있는 타인 곁에서 손을 잡아주고, 가끔씩은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는 내가 미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나는 그와 눈을 마주친 적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를 미행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알지 못할 자괴감과 수치심이 몰려와 난, 얼굴이 붉어졌다. 어느 여성과 만나, 그가 웃으면서 그 여성과 눈빛을 교환하는 장면에, 내가 나타나, '이 여자 때문에 나와 헤어지나고 한거야?' 라고 소리치며 악에 받혀 달려들려고 했지만 그렇게도 되지 않았다. 그는 일상 속에 녹아 있었고 그의 일상이, 나는 무엇인가, 라는 의문이 들게 만들었다. 내 것은 무엇이지?, 라는 의문이 들었고, 나는 와인 2병과 스카치위스키 1병, 소주 1병과 맥주 3병을 마시고 그의 집을 찾았다. 문이 열리고, 그와 낯선 여성이 있는 아파트 앞에서, 괜찮아? 들어와, 라고 그가 말하고 낯선 여성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도움이 필요해, 그가 말하고, 낯선 여성은,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그래? 라는 표정으로 차가운 물을 내게 가져다준다. 그는 나를 부축해서 소파에 앉히고 외투를 벗겨 주고, 낯선 여성은 담요를 가져와 나를 덮어준다. 식탁에는 내가 먹은 것보다 값싼 와인, 과 샐러드와 촛불과 파스타가 먹지 않은 채로 놓여 있고, Ban & Olufsen 의 BeoLab-nine 에서는 'Totem Pole' 이 저음으로 흘러나온다. 낯선 여성은, 그만 갈래, 하는 눈짓으로 그를 보고, 그래, 내일 봐, 라고 그가 말한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그가 내 어깨를 살며시 누르며, 오늘은 여기에 있어, 도움이 필요해, 라고 말한다. 나는 금방 울 것 같이 되어서, 용기 내어서, '저 여자 때문에 나와 헤어진 거야?' 라고 말하고, 그는 살며시 웃으며, 기계가 되어서는 안 돼, 라고 말한다. 낯선 여성이 아파트를 떠나고 그는 내 곁에서,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한다. 난 네 상처가 얼마인지 몰라, 네가 지금 상처받았다면 그건 네 과거의 상처인거야. 네 상처가 아물 때까지 네 곁에 있어줄 수는 있지만, 내 사랑이 네 상처를 아물게 해줄 수는 없다고 생각해, 넌 확신을 가지고 내가 널 어떻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게 아닌 거야. 돌이켜 보면, 네가 이렇게 술을 마시고 헤어진 누군가를 만나러 오는 것이 처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 물론 다른 사람을 미행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닐 거야. 그건 나를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라고 생각해. 다시 시작한다고 해도 네가 이전에 해왔던 이별의 이유와 같은 것들이 너와 나 사이를 저울질 할 거야. 기계가 되어서는 안 돼, 오늘은 여기에 있어. 내가 너를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야.
- 당신이 나와의 선을 분명히 그은 날을 기억해, 그 선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 그 날 이후로 내가 나를 바라보게 된 때를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 이후로도 당신이 미웠고 나를 그렇게 만든 당신을 용서할 수 없었어. 그렇지만 그 날 밤의 당신의 모습은 내게는 큰 용서였고 믿음이었어. 지금도 당신이 밉지만, 난, 그 날 밤의 당신의 모습, 과 당신에 대한 미움을 동시에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고 생각해, 알아, 결코 당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살아 있지는 않을 거야.
- 알고 있어, 그 때 당신을 만나고 나서도 내 허기진 배는 채워지지 않았어, 아무리 당신과 많은 시간을 보내어도, 아무리 크게 웃고 떠들고 마시고, 당신과 잠을 자도 내 허기진 배는 그대로였어, 오히려 더 배가 고파서 당신의 발목과 허리를 잡으며, '떠나지마.' 라고 했어, 그 때 난 무엇이었을까?
- 알고 있어, 당신이 내 눈을 감기고, 날 사랑하기 위해서는 나를 보아서는 안돼, 라고 했던 것을 말이야. 널 봐, 나를 사랑하고 있는,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는, 그렇게 믿고 있는 너를 봐, 그게 네가 말하는 사랑이야, 그걸로 네가 나를 사랑하는 거야, 라고 했던 것을 말이야. 지금도 있는 그대로 내, 안에 살고 있는 당신이 그리워. 그 때 당신이 내 눈을 감긴 것은 옳았어. 그 때 당신이 내 눈을 감겨준 것이 늘 고마워.
저 문을 열고, 그만 저 문을 열고, 이 빈민가에도 빛이 들어와, 끼니를 걱정해야 하기 때문에 책을 읽을 시간이 없어, 물론 당신이 보내온 편지도 읽을 시간이 없어, 살아 있다는 고통을 줄이기 위해, 나는, 생각하지 않고 가벼운 농담으로 시간을 보내는 법을 배워, 술과 과일을 훔치는 것을 익히고 밤이면 문, 을 닫는,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물건을 훔치는 것에도 익숙해 지고 있어. 그러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깨었어, 이 시간에 일어나서는, 이른 시간에 일어나서는 하루를 버티기 힘들어, 난, 눈을 비비고 문을 열었어, 누구야 당신? _ 왜 이래, 나는, 어제 당신과 자지 않았어.
온 집을 뒤진다. 집으로 돌아온다. 가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돈이 떨어져 배가 고프다. 어머니의 폐물(幣物 )과 죽은 아버지가 남긴 물건들을 집어 가방에 넣는다. 그걸 팔아 담배를 사고, 술을 산다. 밤새 떠들고 비빔밥과 볶음밥을 사먹고 처음 보는 남자애들과 잠을 잔다, 좁은 자취방, 안에서 나는 한 마리의 나비와 꽃이 된다. 나는 괴로움도 아픔도 느낄 수 없었고, 화를 내는 나 자신도 볼 수 없었다. 열 다섯, 여름, 저 바닷가에서, 난, 당신을 만났다. 그 이후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당신이 너무 보고 싶어, 이런 말들을 내게 잔뜩해 놓고서 어디로 가버렸는지 보이지 않아, 나는, 이대로 어른이 되고 싶은 생각같은 건 가지고 있지 않아, 조금만 더 당신 앞에서 어리광 부리고 싶어, 그걸 당신에게 허락받고 싶어.
이 내 생각을 하지 않았던 유일한 곳, 빨리 따뜻한 봄이 와서, 물이 마르고 가문 틈을 타 당신
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어, 그리고, 더운 여름날이 되어서 장마에 당신이 어딘가로 씻겨 가버렸으면 좋
겠어, 어서.
저 불빛 아래에서 난 무엇이든지 했어, 무
엇이든지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어, 단
지 무엇이든지 했어, 무슨 말
인지 알아?
귀 기울이며, 말했어, 그 때 당신이 내게 무
엇이라고 했는지 기억해, 이 순간을 나타
낼 수 있는 단 하나의 낱말,
그걸 위해서 살아.
당신의 책임질 수 없는
말, 이 싫어.
오늘, 당신과 이야기하면서, 왜 지금껏 그 사실을 알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 때는 죽어야지 하는 마음에, 그걸 들키고 싶
지 않아서 말을 아무렇게나 할 수 없었어요, 이건 내가 꿈꾸었던 생
활이 아니었기 때문에,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했어요, 우울한 기분
이 들었고, 불안한 마음, 이었어요. 3주 전에 치사량의 mood stabilizer
를 복용하고 의식없이 눈을 깜빡이던 당신은 그 날 이후로 살이 빠져
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어, 그런데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
고 있네요, 라는 말을 하지 못했어. 연신 손가락을 움직이면서 '도와줘'
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당신에게 그 말을 하지 못했어, 손목에
나 있는 자해의 자국들을, 내, 눈으로 확인하며, 이번이 몇 번째일까?
그렇게 죽음으로 내몰리며 당신이 치사량의 약을 복용했던 일이 말
이야, 라는 생각을 했어. 초등학교 1학년 때는 무척 힘들었어요, 몸무
게가 11kg 밖에 나가지 않았고 키도 작았어요, 책가방은 엉덩이에 걸
려 있고, 신발주머니는 바닥에 끌고 다녔어요, 초등학교 학생들은 보
면, 힘들거야, 라는 생각을 하게 되요. 왜 지금껏 그 사실을 알지 못했
던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 나를, 바라보며, '내 죽음을 예견하지 못했기 때
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어요, 당신 탓이예요.' 라고 말하는 당신을 바라
보며, 이렇게 여린 사람이었다는 것을 왜 알지 못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 아니요, 저는 여리지 않아요, 독하지 않았다면 그토록 죽으
려고 약을 먹었겠어요?, 라는 말을 하는 당신을 보면서, 이렇게 여리
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왜 그토록 당신을 밀어내었을까?, 하는 생
각이 들었어,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말이야 _ 이 사실을 기억해 두고 싶어.
이 환타지를 물로 씻어내기 위해
겨울을 지나 바람 위로
고개 숙이며 다가온 당신을 맞이해.
물과 눈이 범벅이 되어 땅 위에 앉아 있
는 거짓말들을 이제는 밟을
수 없으므로 - 걸을 수 없다는 사실이
당신에게도 나
에게도.
이곳에서 드는 생각은 지금껏 나는
고 온도를 따라서 태양이 흔들리는 것
을 보고 있으면서도 당신은 내게 그렇
게 말해, 무책임하다고 생각할 수 없게
흔들림 없이 걸을 수는 없다고 어리광
을 부리기도 전에, 어떻게 나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하지, 그렇지만
흔들리지 말라고,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시계추를 따라서 올 수
없는 곳으로 이제는 갈 수 없다고 말하
면서도, 내리는 비와 움직이지 않는
태양과 산들 사이로 나같이 희미한
안개와 바람이 몰려오고 있다고 말하면
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