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e Street

from 글쓰기 2009. 6. 9. 00:02

  저 불을 꺼 줘, 나는 이제 저기 살지 않아, 저 곳에 서지 않고, 벽에 하이힐과 스커트와 핸드백을 기대고 서 있지도 않아, 이제 그만 저 불을 꺼 줘, 내 기다림과 함께 저기 스위치를 내려 줘. 
  어느 날 나는 이제 더 이상 당신을 만나지 않는다면 사랑은 없고 그리움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남은 늘 그렇듯 내 마음속에서 제멋대로 온오프가 될 뿐이다. 저기 서 있으면 당신이 귀가하는 것이 보인다. 당신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나는 당신이 나를 발견하길 바라며, 다음 골목에 숨는다. 그러면 철제 대문이 열리고 그 안으로 당신이 사라진다. 나는 골목과 철제 대문과 당신의 방에 불이 켜지는 것을 바라보고 무겁게 발걸음을 돌린다. 당신 때문에, 나 이만큼 힘들어, 라고 말하려고 전화를 걸었다가 그만 끊는다. 당신이 발신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어오면 나는 손 안에 느껴지는 핸드폰의 진동과 반짝이는 LCD 창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화를 받지 못한다. 친구는 이런 바보짓을 그만 두라고 말하고,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고 말한다. 나는 술을 마시고 저 골목길에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끝없이 떨리는 것을 느낀다. 어떻게든 당신이 내가 이만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좋겠어, 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불이 꺼지는 것을 본다. 저기 멀리서 친구가 달려와 등을 깨어 버린다. 어둠 속에서 친구와 나는 입을 맞추고, 친구는, 이제 그만해, 너 힘들어 하는 거 더 이상 못 보겠어, 라고 말하고, 내 손을 잡아끈다. 그러다가 당신이 저 골목길로 들어와, 내게 말한다, 여기서 뭐해? 들어와, 나는 친구의 손을 놓고 당신을 따라 어둠 속의 골목을 벗어나 당신의 집으로 들어간다. 나는 당신에게 버림받고 또 다른 남자친구에게 구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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