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ject in Waiting

from 글쓰기 2009. 6. 6. 13:26

바로 저 자리였던 거 같아, 혜화동 구석의 숙소에서 살게 되었을 때, 심한 열병으로, 머리가 아프고 며칠씩 구토하고 일하러 나가지도 못하고 추위에 떨고 있을 때, 당신이 내 옆에 누워 있던 곳이 말이야. 당신과 헤어지고, 소극장 청소를 시작했을 무렵이었어, 한 달에 20만원을 받으면서 나이든 아주머니들 틈에 섞여서, 어쩌다 이런 일을 하게 되었어요? 라는 말을 들으면서,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열심히 일하던 때였어, 소극장 바닥에 그려져 있는 당신의 모습을 닦고 지우면서, 친구들과 만나는 것도 멀리하고, 책을 읽는 것도 그만두었을 때였어, 나, 혼자, 저 숙소의 한켠에서 당신이 사 준 핑크박스 바비와 켈리클럽을 두었어, 사람들이 그랬어, 그 인형은 싸구려야, 그래도 난 아랑곳 하지 않았어, 그 곳에서만 살았어, 그러다 병이 나서 당신에게 전화할 수 밖에 없었어, 어쩔 수 없었어, 당신 밖에 없었으니까, 내게는 그랬으니까 _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있었던 걸까? 저기에 비스듬히 누워서 내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으로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내 열병이 낫기를 바라고 있었을까? _ 이대로 계속 아프면 좋겠어, 그렇게 해서 당신이 나를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계속 지금처럼 아파서 당신이 그렇게 내 옆에 누워 있으면 좋겠어. 내가 당신에게 말한다. 그럴 수 있어, 당신이 말한다, 그런 마음을 가질 수도 있어, 어린 아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그럴 수 있는 거야, 나는 내 옆에 놓여 있던 펜탁스 카메라를 당신에게 던진다. 당신이 자리를 떠나고 당신이 누워 있던 자리를 향해 셔터를 누른다. 그 날 밤 나, 는 더 심한 열병을 앓았고 당신에게 쉬지 않고 전화했다, 당신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이번에는 받을 거야, 나 너무 아파, 하는 심정으로 다시 다이얼을 누른다. 그리고 저 자리로 눈길을 돌렸을 때, 전화기를 힘없이 손에서 놓는다 _  이상하게 당신이 이제는 정말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 현실이 되었을 때, 열병이 나아 버렸다 _ 사람과 멀어지게 되면 병이 나게 되어 있어, 그건 당연해, 인형하고만 살면 병이 나게 되어 있는 거야, 당신이 말한다 _ 이 사진은 당신의 완전한 부재에 대한 증거로, 내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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