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외출을 하고, 늦게 피어 있는 개나리와 진달래를 보았다. 지난겨울을 무섭게 보냈던 터라, 그 모습이 얼마나 반가운지, 거리 기슭에 피어 있는 쪽으로 뛰어가다시피 기어올랐다. 지난겨울이 무서웠던 것은, 추위와 배고픔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시 덤덤하게 집으로 돌아오며, 내일 하루 동안 마실 커피를 구입했다. 혼자 있는 날이면, 이상하리 만치 과거의 일들이 뚜렷하게 기억난다. 그리고 왜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그토록 잘 견딜 수 없었는지가 분명해진다. 오랫동안 나는, 나의 친구들과 나의 다른 연인들을 만나는 동안, 내 과거의 시간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불쑥 고개를 내미는 고통을 다시 아래로 밀어 넣기 위해서, 나는 사람들과 쉴 새 없이 이야기하고, 술에 취하고,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을 많이도 저질렀다. 그리고 그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다시 나를 상처입히는 일이 반복되는 악순환이었다. 아픔을 잊기 위해서 나는 나를 아프게 하는 일들만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가를 내게서 떨어뜨려 놓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현실 속에 있었다. 마치 누구도 알 수 없는 여행을 다녀온 듯, 나는 아무 생각없이 어떤 일인가를 저지르고, 다시 어느 순간에 내 자리로 돌아왔다가, 그것이 참을 수 없어, 다시 어떤 일인가를 저지르고, 나는 정말 구제불능인가 보다, 라는 생각에 또다시 같은 일을 저지르고는 했다. 결국 무엇 때문에 내가 그러고 있었는지 불분명해지고, 지독한 자기혐오만이 남았다가, 아니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라는 자기기만이 솟고, 그러다 다시 자기혐오와 자기기만을 오고 갔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전혀 다른 시간이다. 외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내게 가장 큰 위안이 되었던 것은 나의 작은 방과 손에 들고 있던 커피였다. '그래, 이것만 있으면.' 하는 것,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