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먹고 싶어."
밤이 되자 시끄럽게 떠들어 대던 녀석의 입에서 이상한 말이 나온다. 꽃을 먹겠다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꽃 말이야, 투툼해서 입 안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것 말이야."
그걸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다. 왜 하필 지금 꽃을 먹어야 하는지를 묻는 것이다.
"먹고 싶다는 것에 이유를 대는 경우도 있어?"
나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왜 먹어야 하는지 말하지 못한다면, 왜 먹는지 모른 채 먹는다는 것은?, 이라고 내가 반문한다.
"됐어, 사 주기 싫으면 관둬, 안 먹어, 치사해서 안 먹어."
그렇게 대화가 끝나면 한동안 서로 말하지 않기를 반복하다가, 이틀 무렵이 되었을 때 내가 먼저 말을 건다.
"꽃 먹으러 안 갈래?"
"꽃? 그래, 먹으러 가."
대화는 짧다, 이해되지 않았던 때는 남아 있고 서로를 시험하는 순간은 며칠이고 계속된다. 지금이 헤어질 때다.
"전에 꽃을 먹으러 가자고 했을 때 내가 왜 그러는지 물었잖아, 그런데 거기에 넌 대답을 하지 않았고, 그러다 하루인가 이틀 뒤에 내가 말했지? 꽃을 먹으러 가자고 말이야, 그러니까 네가 한 말이, 그래, 였지? 우리는 그 이틀 간의 침묵만큼 가깝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 순간 네가 대답하지 못했던 것만큼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거야, 네가 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는 건 네가 언제나 내 곁에 있을 수 없다는 말을 하는 거야, 누구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하게 마련이지만, 너와 헤어질 때는 지금 뿐이라고 생각해, 너를 생각해 봐, 나와 같이 있을 수 없는 너를 생각해 봐."
녀석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를 본다.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 다시는 꽃 같은 거 먹으러 가자고 조르지 않을게 미안해, 가지마."
이럴 때, 나는 녀석을 밀치고 헤어진다. 이런 모습을 마음 속으로 그리며 녀석을 쳐다보면서 말한다.
"한번 쯤은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상상하면서 이야기 해, 지금 네가 한 말이 어떤 의미인지, 그것이 나에게든, 너에게든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면서 이야기하도록 해, 이런 네 모습으로 헤어지는 거야, 나에게 하는 네 어리광은 이것이 마지막이야."
녀석을 처음 만난 건 갤러리에서 였다. 오래된 공장을 개조한 곳에서 루이 암스트롱의 매력적인 목소리와 전위적인 전시물과 앤디 워홀의 사이키델릭한 분위기가 넘쳐 나는 곳에서 녀석은 용케도 내게 용기를 내어 말을 걸고 내게 커피를 사주고 크림색으로 그려진 파스타를 사주고, 내게 다음 날 파티에 입고 갈 블랙 원피스를 사주고, 깊게 파져 있는 등을 스다듬어 주었다. 만나면서 즐거웠던 건 '나는 사랑에 대해서는 잘 몰라' 하는 천진난만함 이었고, 즐겁지 않았던 건 그런 천진난만함이 만들어 내는 만남의 아이러니함, 이, 었다.
'오늘은 이거해, 내일은 저거해, 그리고 다음엔 다른 것을 하도록 하자' 라는 식으로 녀석은 관계에 충실하기 위해서 무엇이든지 하려고 애썼고, 거기에 호응해 주지 않으면 밤새 토라져서 어떤 말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딱 이틀, 녀석의 기억이 한계를 밟는 순간에만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요구가 늘어갈 때쯤, 나는 녀석과 헤어지기로 마음 먹었다. 녀석은 단지 자신의 요구대로 하는 나를 시험하면서 자신의 외로움을 갉, 아, 먹, 고, 있을 뿐이었다.
녀석에게서는 지금도 전화가 오고 메일이 오고, 녀석은 내가 살고 있는 집으로 와서 문을 두드린다, 한번만 만나달라고 내게 조른다, 나는 전화번호를 바꾸고 이사갈 집을 알아보고, 헤어짐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야 할 까닭을 머리속으로 그려본다. 녀석은 지금껏 나를 만났던 것이 아니다, 단지 과거 연민의 어리광부리던 자신의 과거를 나를 통해서 대면했을 뿐이다. 나는, 녀석이 나를 잊지 않기를 바란다, 힘든 위기가 왔을 때, 이렇게 구는 모습이 녀석의 본 모습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는 (저주하지 않지만) 처절히 무너진 다음에 자신의 참 모습을 녀석이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이것이 내가 녀석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호의라는 것을 녀석이 깨닫지 않는 날이 오기를 나는 또한 바란다. 그것은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나를 이용한 최소한의 '벌'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외로운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