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

from 글쓰기 2009. 8. 14. 06:51
솔직해지자고 생각했을 때 당신은 이미 내 세상 사람이 아니었어, 슬픈 운명을 타고났거니, 라고 생각을 하려고 해도 _ 할 수 없어, 라고도 해도 _ 글쎄, 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일이었던 거야, 라고 나는 또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으려고 긴 밤을 타고 하늘거리는 새벽으로 달려가고 있어, 얼마 전에 굉장히 음산하고 나태한 이미지들을 보았어,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촬영하겠다고 하며 뛰어든 곳은 뭐랄까, 할 말이 남아 있지 않은 아이들이 살고 있는 궁전 같은 곳이었어, 술을 따르고 거기에 또 술을 따르고 또는 거기에 또 술을 따르고, 이걸 마실 수 있겠어? 라고 말하는 사람 앞에 내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어, 나는, 그 사람에게 잠깐만, 이라고 하고 사진 한 장만 찍게 해 줘, 라고 말한 뒤 그 사람의 얼굴을 최대한 조리개를 조이고 찍어 두었어, 잘 봐, 라고 하며 나는 냅킨을 치마 위에 수북이 쌓아두고 긴 통로처럼 되어 있는 술과 술과 술이 담겨 있는 짧지 않은 잔을 들이켰어, 붉은색이, 치마 위로 떨어지고 블라우스를 적시고 구두에 점점이 박힌 술방울들이 대리석 바닥으로 물처럼 흘러내렸어. 내 모습을 찍어 줘, 나는 온통 빨간색 투성이의 립스틱을 전신에 바른 것처럼 젖어서 웃고 있었어. 그렇게 내 어릴 적 상처를 재현하고 싶었어, 상처를 재현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아.

2009/08/13 - [어떤 날] - Brush Bu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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