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heranvalley syndrome

from 어떤 날 2010. 2. 11. 01:55
'나는 그랬어.'
테헤란로를 걷는다. 비가 오는 날, 나는 잘못되지 않았어, 라는 말을 의미 없이 되뇌면서, 나는 왜 이런 것일까, 의 회의를 어깨에 짊어지고, 아니 가슴에 묻어두고, 검은 하이힐의 또각거리는 소리에 맞추어, 빗물이 짧은 팬츠 사이로 삐죽이 내민 스타킹을 적실 때, AM 12:00, 지금 몇 시야? 라고 생각하면서, 지금 누군가 말을 걸어온다면, 기꺼이 하룻밤 정도는 괜찮아, 라는 심정이 되어서, 길을, 걷는다 차라리 걷지 않는 것이 나았을 거야. 비가 오는 날.

친구는 전화로 내게 말한다. 그것 봐, 그 사람과 헤어지고 너는 조금 이상해졌어. 마치 세상을 다 산 것처럼 그러고 있잖아, 그런 너를 보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어떻게 해달라고 말한 적 없어. 다른 사람을 만나보지 않을래? 주위에 좋은 사람이 있어, 만나 봐. 그래 알았어. 그런데 오늘은 걷고 싶어. 비 오지 않아? 괜찮아. 우산이 없어도 좋아. 적어도 이런 날은 혼자가 아닐 수 있어. 그것 봐. 이상해졌어. 아니야 내일 전화할게. 여기서 집까지 거리도 얼마 안 돼. 내가 데리러 갈까? 아니 괜찮아. 너는 내일 출근해야 하잖아.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둘이 된다. 내 옆을 당신이 걷고, 내 옆에서 당신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그것 봐. 너는 그것 밖에 안 돼. 술을 마셨을 뿐이야. 이런 날 길을 걷는 것은 옳지 않아. 왜 당신이 그런 것을 판단해? 나는 아주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그 이후로는 어떤 말도 할 수 없게 된다. 나 같은 사람을 안아주어서 고마워. 아직도 너는 그러고 있니?

도시의 불은 때로는 밝지도 어둡지도 않다. 인공적인 빛에 가려져 있는 빌딩의 그림자에 숨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를 생각한다. 지금은 무엇도 하지 않는 것이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이야. 순간 플래시백처럼 당신이 내게 한 짓이 떠오른다. 곧 나아질 거야. 무엇도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너는 지금부터 네가 꿈꾸는 모든 것을 현실로 경험하게 될 거야. '하이(high)'에 이르렀을 때는 절대 나를 찾아서는 안 돼. 알겠지? 그러나 나는 하이에 도달했을 때 당신을 찾았고, 그 이후로 당신은 내게 마치 아주 의미 있는 사람처럼 되고 말았다. 그러고 나면, 내가 너에게 무슨 짓을 해도 너는 그냥 고개만 끄덕이게 될 거야. 하이에 이르렀을 때, 결코 나를 찾아서는 안 되었어. 당신은 얼음이 녹아 물이 떨어지는 것처럼 내게 말한다.

'나는 그랬어.'
알잖아, 그 때 부모님은 이혼을 했고, 나는 누구를 따라가야 하는지 고민을 해야 했어. 그리고 누구도 선택할 수 없었을 때, 나는 마치 쓸모없는 것처럼 느껴졌어. 그리고는 정말 혼자가 되었어. 매일 밤 내게 주어진 아파트 욕실에 앉아서 그 날 먹은 것들을 뱉어내면서, 손가락을 입에 넣어서, '나'라는 건 정말 살아갈만한 것일까, 에 대한 생각만을 했어. 매일 밤 쉬지 않고, 손가락을 입에 넣어서 구토를 하고, 샤르트르의 'La Nausée'를 읽으면서, 적어도 내게는 토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서 좋아, 라는 어리석은 생각만을 했어. 그러다가 당신을 만난 거야. 

'나는 그랬어.'
나는 이별도 사랑도 자유롭지 못했어. 내겐 늘 옆에서 '넌 이 세상에서 가장 예뻐.' 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어. 그런데 당신은 그러지 않았어, 어떤 생각에서인지 나는 꼭 당신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런 오기를 부리고 싶었어.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상관없었을 테지만, 나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나는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야 하는 '인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나는 어때? 같이 있을 만 해? 그런 말 하지 마. 앞으로 내가 잘할게.

'나는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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