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body loves me

from 어떤 날 2009. 5. 3. 18:12
"그 사람의 진심이 궁금해. 그 사람은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걸까? 그걸 묻고 싶어, 그걸 확인하고 싶어." 술에 취해서 하는 말이 즐겁지가 않다. 이 녀석은 살아야 할 가치를 가지고 있기나 한걸까? 내일부터는 이 녀석을 만나고 싶지 않다. 곡은 Ella Fitzgerald 의 'Somebody loves me' 다. 바텐더는 내게 눈을 마주치려고 하다 선반에 글래스를 정리하기 위해 고개를 돌린다. 하필 이렇게 좋은 음악에 이 녀석의 고백이 쏟아지는 것이 반갑지가 않다. 이 녀석은 자신보다 10살 연상의 유부남에게 마음을 빼앗겼다고 한다. "자려고 누으면 그 사람 생각이 나, 같이 있을 때의 즐거운 느낌, 가슴의 두근거림 같은 것이 말이야, 그런데 정작 그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려고 하면 얼굴이 생각이 안 나." 나는 술잔을 놓고 듣지 않는 척 한다. 들을 가치가 없다기 보다는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이 녀석이 귀 기울일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과는 내가 다르다고 해. 내 또래들과는 내가 다르게 느껴진다고 했어. 그러다가 이 사람과 같이 잠을 자면 어떤 느낌이 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같이 잠을 잔 그 새벽은 혼자 남겨져 있었어. 늘 집에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던 그가 그 날은 유난히 신경을 쓰면서 집에 들어가 버렸어. 그 날은 분홍빛의 모텔방에 나 혼자 남겨졌어. 그런 기분은 처음이었어. 그 사람이 그랬어. '우리에게 미래는 없어.' 라고. 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나만 상처받을 거라는 이야기인 걸까? 왜 그 사람은 상처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확인하고 싶어. 언니는 어떻게 생각해?" - 나는 머리 한 쪽으로, 술값을 내고 집으로 돌아가 읽어야 할 책과 듣고 싶은 음악, 영화들을 정리한다. 긴 밤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이 녀석을 떼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이 녀석에게 주던 용돈이며, 학비, 식비, 의상대여비를 끊고, 이 녀석에게 내어 주었던 아파트 키며 자동차 키를 어떻게 뺏을까, 하는 생각만을 한다. "언니, 그 사람이 보고 싶어." - 나는 술에 취해 테이블 위로 쓰러진 녀석을 놓아 두고, 이 녀석을 위해 헤네시 한병을 더 시킨다. 그리고 자리를 떠난다, 이제 이 녀석을 볼 일은 없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일까 하는 것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어하는 녀석에게는 미래도 희망도 없기 때문이다. 그 녀석은 단지 그 유부남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일까 하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감정을 사랑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녀석은 이제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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