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 Novel #14

from Reset 2009. 11. 18. 07:41
언니, 여기 타워 꼭대기야, 저기 펜트하우스도 보여, 지금 난간에 앉아 있어, 여기는 바람이 많이 불어, 언니는 어디야? 여기에 앉아 있다가 언니가 오지 않으면, 뛰어내리려고 해, 바람 소리 들려줄까? J가 말한다, 태연하게, 타워 꼭대기에서 만들어내는 바람 소리에 J의 목소리가 탁하게 들린다. 무슨 일이야? 나는 들고 있던 전화기를 어깨와 머리 사이에 끼우고 오븐에 들어 있던 베이글을 꺼내면서 말한다. 잠에서 깨어나서 다시 한 번 더 지난밤에 내가 있던 다락방으로 가보려고 했어, 나쁜 꿈을 꾸고,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지금의 내 모습을 보고, 내 진짜 모습을 보고 나서 오들오들 떨면서 숨어 있던, 언니가 나를 찾아 주었던 다락방에 가려고 했었어, 언니가 잠들어 있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다락방으로 가려고 했었는데, 잠겨 있었어, 언니가 그런 거야? 그러니까 옛날에 언니가 맨션에서 엑스에 취해 있던 내 손목을 언니의 손에 묶고 밤을 보내었던 일이 생각났어, 손목이 시리고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 나서, 기억하지?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싶어졌어, 나를 찾으러 와, 여기에 오면 이곳에서 찍은 하늘도 보여줄게, 그렇지 않으면 여기서 뛰어내릴 거야, J? J의 전화기가 몇 초의 침묵과 바람 소리, 에 섞여서 타워의 꼭대기에서 아래로 떨어진다, J가 전화기를 타워의 꼭대기에서 아래로 떨어뜨린다, J의 전화기는 마치 음반이 튈 때 나는 소리를 내며 부서지고, 나는, J를 부르는 소리가 도로의 바닥에 깔린다, 그러자 J가 난간에 앉아 있고, 타워의 하늘을 바라보면서, 텅 빈 눈이 되어, 마치 J의 눈이 지평선처럼 반짝이는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반으로 나누어진 베이글을 접시 위에 올려놓고, J의 외투를 손에 들고, 드레스룸으로 들어가서 거울을 보고, 머리를 J처럼 묶을까, 를 생각하다가 옷을 갈아입지 않고, 나와서, 하이힐과 스니커즈 중에서 무엇을 신을까, 를 고민하다, 스니커즈를 신고, 집을 나선다, 커피가 마시고 싶어, 더블 톨 라테를 사서 양손에 들고 타워의 꼭대기로 향한다. J의 외투가 팔에 위태롭게 달려 있다.

J는 타워의 꼭대기 난간에 앉아 있다, 장난스럽게 낡은 목측식 카메라의 장식처럼 달린 뷰파인더로 하늘을 보면서, 나는 멈춤 동작 없이 J를 부르지 않고, J와 함께 난간에 앉는다, 더블 톨 라테의 하나를 J에게 건네어 주고, 외투를 J에게 덮어주고, 더블 톨 라테를 한 모금 마신다, J는 나를 신경쓰지 않고 한참 동안 하늘을 올려다보다 카메라를 내려놓는다, 언니가 올 줄 알았어, 언니가 나를 이런 위험에서 구해줄 줄 알았어, 다른 사람이 아닌 언니가 그렇게 해줄 줄 알았어, J가 말한다, 아침에 먹으려고 베이글을 준비하고 있었어, 어제 잠은 잘 잤어? 이 난간에 앉은 적이 있어, 여러 번, 나도, 네가 무언가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이해해, 몇 번이라도 네가 이런 곳에서 내게 전화를 하면 나는 매번 널 찾아서 올 거야, 그렇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해 두고 싶어, 마음은 전해지기 마련이야, 네가 나에게 무엇인가를 위험하게 확인하고 싶다면, 나도 너를 통해 무언가를 확인하고 싶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관계는 확인하려고 하면 할수록 알 수 없게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니었을까? 알고 있지? 너에게 일어났던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거야,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너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거야, 우리는 그런 바탕 위에 있는 거야, 내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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