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from 어떤 날 2009. 6. 22. 02:01

가끔 내 창을 덮고 있는 커튼은 이상한 빛을 낸다, 때로는 얇은 선만을 보여줄 때가 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MUSCAT OTTONEL ICEWINE 을 한 병 산다. 문을 열고 들어와서 무릎까지 쌓여 있는 책들을 지나, 내일 해야 될 일을 살펴본다. 월요일 일정은 느슨하게 잡아두는 편이다. 월요일에 바쁜 건 질색이기 때문이다. 주방에서 가져온 잔에 와인을 따른다. 밝은 금빛에서 레몬향이 풍겨 나온다, 한 모금은 레몬 맛으로 끝이 난다, 레몬 껍질에서 나는 향이 입 안을 가득 메운다. 그러다 LOMO LC-A 의 렌즈 창을 열고 닫고, 손 안에서 가지고 놀다, 뷰파인더로 집 안을 살펴본다. 그리고 커튼에서 멈춘다. 빛이 없어 찰칵하는 소리가 조금 늦게 난다. 저 커튼을 열지 않은지 얼마나 되었을까?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시집을 한 권는다. 조정권 시집 '신성한 숲'. 시집의 첫 면에는 누군가가 나에게 적어준 글귀가 있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와인 잔을 들고 욕실로 향한다. '목매달지 말며 결과에 집착하지 말며 다만 최선을 다할 것, 돌아가는 것도 좋을 수 있단다. 너는 오늘 무엇을 하고 보았느냐, 어제 보지도 듣지도 못한.'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는다. 누구나, 어떤 평범한 사람도, 삶의 진실 하나는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다, 라는 말이 떠오른다. 욕실에 와인 잔을 두고, 한 손에는 시집을 들고, 그 말을 포스트잇에 옮겨 적는다. 옷을 벗는다. 속옷만 입고 있는 모습이 거울에 비친다. 앙상하게 말랐다. 욕조에 몸을 담근다. 와인의 레몬 향이 그만이다. 욕조에 몸을 기대고 누워 '신성한 숲'을 읽는다.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취기와 졸음이 쏟아져 온다. 안을 열고 / 이 고요 잠근다. / 밖이 가득하다. 나는 시집과 와인 잔을 테이블에 올려두고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몸으로 침대에 눕는다. 이런 오르가즘은 정말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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